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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14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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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벤처정책은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다.‘벤처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정부가 수조원의 돈을 싸들고 직접 투자한 것이다. 벤처기업을 지정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고, 벤처기업에 지원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었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벤처로 몰리고, 벤처를 한다는 사람은 힘있는 사람에게 줄을 대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요즘 벤처게이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정부는 벤처기업 지정을 민간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일시적으로 비판을 피하려는 말치레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다.
▷벤처기업에는 정부가 끼어들지 말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벤처기업인을 너무 배만 부르게 만들었다. 아니 진짜 벤처기업인은 배고픈 반면 ‘사이비 벤처’만 배부른지도 모른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육성하지 않아도 벤처기업에 투자할 사람들은 많다. 자본이 모자라는 벤처기업에 자본을 대주는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인 에인절클럽(angel club)이 그들이다. 자본은 없이 아이디어만 있고 제품조차 나오지 않은 창업 초기의 기업에 돈을 맡기는 투자자들이 벤처기업인에겐 ‘천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벤처기업이 잘 크려면 우수한 벤처기업인이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좋은 에인절클럽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재력가나 사회지도층 인사 가운데 에인절이 많다. 민간인들이 투자할 만큼 유망한가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한해에 수십만개의 벤처기업이 생기는데도 이중에서 주식시장에 상장해 기업주가 돈을 버는 경우는 0.1%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가 에인절의 역할을 대신하다보니 제대로 된 유망벤처를 발굴하지 못해 ‘사이비벤처’ ‘불법벤처’가 되레 판치는 세상이 됐다. 공무원이 주식을 받고 벤처기업으로 지정해주면 은행들이 거액을 투자해주는 식으로 벤처기업을 키운 탓이다. 에인절이 아니라 사기꾼이나 진배없다. 사기범죄를 저지른 벤처기업을 취소한다고 해서 이런 행태가 사라질까.
박영균 논설위원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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