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자는 왜 부지깽이 휘둘렀나'비트겐슈타인은 왜?'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36분


비트겐슈타인 (왼쪽) 포퍼 (오른쪽)
비트겐슈타인 (왼쪽) 포퍼 (오른쪽)
◇비트겐슈타인은 왜?/데이비드 에드먼즈·존 에이디노 지음 김태환 옮김/357쪽 1만1000원 웅진닷컴

잘 알려진 인물들의 행적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요즘에는 그런 관심의 초점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혹은 정치인들 주변을 맴돌지만, 언론의 영향으로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심심찮게 전해지곤 한다.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이 이 책(원제:Wittgenstein’s Poker)은 20세기 철학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인물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의 짧은 만남이 남긴 긴 뒷 얘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1946년 10월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의장이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정례 철학 발표회에서, 격한 논쟁 끝에 뜨겁게 달아오른 벽난로의 부지깽이를 흔들며 초청 연사 포퍼를 위협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이 문제의 스토리의 대강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은 당시 ‘부지깽이 스캔들’이 일어난 발표회의 참석자들 중에 아직 생존하고 있는 아홉 명의 목격자들을 찾아내 편지와 전화 그리고 e메일을 통한 인터뷰를 토대로 스캔들의 실체를 재구성하려 했다.

성급한 독자들은 두 철학자의 유일한 만남이었던 그 10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이 책이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들의 시도가 이름 난 두 철학자의 별 것 아닌 에피소드를 과대 포장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려는 저널리즘의 가벼움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먼저 사소해 보이는 10분간의 일화를 인문학적 가치가 물씬 풍기는 300여 쪽 분량의 책으로 엮어낸 저자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단순한 스캔들을 가지고 빈 출신의 두 유태계 철학자의 사회·정치적 차이를 밝히고, 그로부터 철학적 입장 차이를 이끌어내는 통찰력 또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언어게임, 가족유사성, 무한성, 귀납과 확률의 문제 등 굵직한 철학적 주제들을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풀어내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그래서 원래 스캔들의 초점이었던, 비트겐슈타인이 진정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포퍼를 위협하고 격앙된 상태로 자리를 뜬것인지를 밝히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가벼워 보이는 주제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기대 이상의 유쾌한 지적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책 뒷부분에 제공된 두 철학자에 대한 꼼꼼한 연보와 여느 학술서적에 못지 않은 참고문헌 목록에도 불구하고 인용문들의 출전을 밝히는 친절함을 독자들에게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을 앗아갈 수는 없다. 순수한 철학 책이 아님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의 요소를 담고 있고, 결코 추리소설이라 할 수 없지만 다큐멘터리와 추리문학의 색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의미의 전기라 할 수 없음에도 20세기 철학에 발자취를 남긴 두 사람의 삶의 역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병철(부산외국어대 교수·서양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