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밖에서 본 정체성 ‘현대 한국사회 성격논쟁’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46분


◇밖에서 본 한국사회 정체성:식민지, 계급, 인격윤리/석현호·유석춘 공편/207쪽 9000원 전통과 현대

사회과학에서 ‘비교’의 시각이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 일찍이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하면서 모국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문제점을 새롭게 발견한 바 있다. 다른 나라에서 자기 나라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때 문제들은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법이며, 그러기에 비교의 시각은 자연히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토크빌적 비교’의 장점을 십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그 동안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던 세 명의 한국인 사회학자인 신기욱(미국 스탠포드대), 구해근(미국 하와이대), 장윤식(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 교수의 연구에 대한 중간평가를 담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이 이제까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 여섯 명의 국내 사회학자들이 논평을 하고 있다.

이 세 사회학자들은 미국 사회학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사회학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구 교수의 계급 모델은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계급 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신 교수의 식민지 연구는 1990년대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에 작지 않은 자극을 주어 왔다. 그리고 장 교수의 인격윤리에 대한 논의는 최근 ‘아시아적 가치’ 논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쟁점이다.

이 가운데 특히 평자의 관심을 끈 것은 신 교수와 구 교수의 글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농촌적 기원론’이 신 교수의 핵심 견해라면, 한국 노동운동이 빠른 성장을 이룬 성공 사례라는 것이 구 교수의 핵심 주장이다. 신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구 교수는 노동운동의 성급한 위기론에 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견해들은 그 동안 국내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와는 다소 상이한 결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평자가 보기에 이런 분석에는 무엇보다 비교의 시각이 갖는 장점이 녹아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한국의 경험을 보편적인 개념 및 이론틀로 조명함으로써 우리 역사와 현실이 갖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한국 현실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분석논리나 서구 이론틀로 우리 현실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려는 ‘서구중심적’ 분석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 마디로 국내학계와 국제학계에서 동시에 통용될 수 있는 논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들 연구의 미덕이다.

이런 연구에 물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균형의 시각이란 비판적 종합에 이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구 이론과 우리 현실의 소박한 절충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밖의 다른 지점에서 우리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적극적인 답변은 당연히 국내 사회학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김 호 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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