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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4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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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가 아닌 사람이 실업자를 가장해 점포를 임차해 사채놀이 등을 하거나 임차한 사무실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임대해 임대료를 챙기는 수법 등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 사업은 외환위기로 실업자가 급증하자 근로복지공단이 1999년 ‘장기 실업자 자영업 창업지원 사업’ 중 하나로 마련한 것으로 5000만원 이내의 점포를 임대해 장기 실업자에게 연리 7.5%의 이자만 받고 빌려주는 제도다.
지금까지 3000여명에게 1800억원 상당의 점포가 지원됐다.
▽악용 실태〓10여년 동안 사채업을 해온 김모씨(40)는 실업자로 가장해 99년 말 유학원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공단으로부터 경기지역에 15평 규모의 전세 2500만원짜리 점포를 빌렸다.
그러나 김씨는 유학원처럼 책상과 유학 관련 자료만 사무실에 비치해 두고 임차한 사무실을 사채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김씨는 월 15만원 정도의 이자를 공단에 내가며 벌써 두 번째 재계약을 한 상태.
김씨는 “관리감독이 소홀해 공단 속이기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며 “연 7.5%의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 아무 탈 없이 사무실을 임차해 쓸 수 있어 다른 사채업자들도 이런 방법으로 사무실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20여평의 점포에서 카오디오를 판매하며 월 100만원씩의 임대료를 내던 박모씨(30)는 10월 임대료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다 원래의 점포를 정리하고 실직자로 가장해 공단에 점포 임차를 신청했다. 박씨는 “작년에 장기 실업자로 등록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전세 5000만원짜리 점포를 임차했다”며 “월 30만원 정도의 이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임대료 비용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공단으로부터 전세 3000만원짜리 점포를 음식점 명목으로 임차한 정모씨(49)는 “임차한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 전세금을 챙겼다”고 실토했다.
▽원인과 문제점〓공단은 신청자의 재산 정도는 고려하지 않고 사업계획서와 실업입증서류 등 간단한 서류 검토만으로 점포를 임대하는 등 사전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3개월에 한번씩 정기 실사를 하게 돼 있지만 1년에 한번 하는 경우가 많고 실사를 하더라도 형식적이어서 악용 사례가 전혀 적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 실사를 통해 허가 없이 영업을 변경하거나 유흥, 향락, 사채업 등 금지된 영업을 하는 것이 적발되더라도 공단측은 임대 점포만 회수할 뿐이어서 처벌 규정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공단의 무대책〓공단 관계자는 “적은 인원으로 3000여곳의 점포를 3개월마다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관리 감독을 강화할 계획은 없고 책정된 예산이 남아 있어 자격조건을 완화하고 지원 규모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동배(金東培) 교수는 “더 지원할 예산이 있다면서 관리 감독비용을 책정하지 않은 채 인력만 부족하다는 공단측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사회복지를 계층과 대상별로 전문화해 민간기관으로 하여금 대신 관리토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