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제35기 아마국수전 우승 홍맑은샘 7단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30분


“한달전부터 끝내기 공부를 하고 난 뒤 성적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전엔 20집 이기던 바둑도 터무니 없이 끝내기를 하다가 지곤 했는데 최근엔 거의 진 적이 없어요.”

최근 열린 제35기 아마국수전에서 아마 서열 1위 하성봉 7단 등 강자를 물리치고 우승한 홍맑은샘 7단(20). 올해 목석배에서 우승한 것 외에 번번이 정상 도전에 실패했던 그가 연말에 굵직한 타이틀을 하나 손에 넣으며 명예회복을 했다.

한달전 극도로 부진한 성적에 마음 고생을 하다가 찾은 곳이 경기 부천시의 정경수 바둑도장. 홍 7단의 매니저나 다름없는 아버지 홍시범씨가 소개해줬다. 정경수 원장이 아마 5단의 실력이지만 끝내기만큼은 나름대로 독특한 이론을 개발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 5단은 이창호 국수의 기보를 모두 외운 뒤 그중 끝내기만 집중 연구해 나름대로 형세판단과 끝내기 이론을 개발했습니다. 그걸 한달 째 배우고 있는데 역끝내기 타이밍, 숨어있는 집을 알아내는데 이젠 제법 눈을 떴습니다.”

아마 최정상급인 홍 7단이 도움을 받았다니 꽤 흥미를 끌었다. 홍 7단은 앞으로 2∼3년간 정 5단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을 생각이다.

홍 7단의 기풍은 아마 고수들 사이에 ‘독특’ 그 자체로 꼽힌다. 스스로도 “프로가 볼 때는 ‘맛이 간 바둑’의 전형이죠’라고 말한다.(장면도 참조)

그러나 그는 꿈과 낭만이 있는 바둑을 두고 싶어 한다.

“최근 한국기원 연구생 후배들의 바둑을 보면 확실한 수가 아니면 두지 않아요. 이기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기려고만 바둑을 두면 재미없잖아요.”

그가 연령제한(만18세)을 3년이나 남기고 연구생에서 탈퇴한 것도 ‘이런 수는 안된다’고 단정하는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화려한 감각의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의 바둑을 좋아한다.

홍 7단은 아마국수전 우승으로 내년 세계아마바둑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그는 33기 아마국수전에서 우승한 뒤 세대회에 참가해 3위를 기록했다. 이번엔 우승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프로에 자동 입단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선 일단 우승하고 나서 말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으론 아마로 남고 싶습니다.”

-그래도 아마 고수들의 꿈은 프로가 되는 것 아닌가요.

“아마로 남으면 프로보다 훨씬 대회를 많이 치룰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바둑〓인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바둑 시합을 좋아할 뿐이죠. 아마로 남아야 그걸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제35기 아마국수전 결승전 기보.

홍맑은샘 7단이 백이다. 프로기사에게 이 기보를 보여주면 누구나 “흑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흑은 4귀의 실리가 짭짤한데다 좌변에서 ○로 백 한점을 제압해 두터움까지 갖고 있다. 백의 유일한 자랑인 우변 세력은 너무 허점이 많아 온전하게 집으로 만들기 힘든 상황. 하지만 홍 7단은 ‘자신이 딱 좋아하는’ 포석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이 ‘곤마’인 좌변 흑을 몰아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 얼핏 보기엔 말도 안되는 이상한 감각 같지만 홍 7단의 말대로 바둑이 진행돼 결국 백이 11집반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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