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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1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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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2월 2일 오후 4시, 중국 베이징 서남쪽으로 50㎞ 떨어진 작은 탄광촌 저우커우뎬(주구점·周口店)의 한 동굴에서 ‘인류의 기원’이 밝혔졌다.
석회와 진흙이 잔뜩 묻어 있는 두개골이 50만년만에 빛을 본 것이다. 이 두개골은 후에 ‘북경인’으로 불리게 됐다.
이 책은 ‘북경인’ 발굴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고고학 다큐멘터리다. 뼈 조각 몇 개 발견된 것이 뭐가 대수인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왕퇴의 귀부인’ ‘구룡배의 전설’ 등에서 전문가에 필적하는 글쓰기를 보여준 보고문학가(報告文學家) 웨난은 인간의 자신의 족보를 명쾌하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당시 북경인이 발견되기 전까지 1858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인간의 유인원 진화설은 미완의 것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발굴(1856)되었지만 유인원 진화론의 확신을 주기에는 미흡했고, 그 후 출토된 자바인(1891)은 일부 골격이 원숭이와 가까웠다.
하지만 자바원인보다 후에 출현한 북경원인은 뇌의 용적, 머리뼈나 사지뼈 모두 현대인과 구별할 수 없었다. ‘북경인’의 유골 발견으로 인해 직립인(호모 에렉투스)의 생존 연대가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오래됐음이 확인되면서 유인원 진화설을 사실로 확정지었다.
작가는 이처럼 귀중한 화석 발굴의 과정에만 눈길을 준 것은 ‘북경인’이 1941년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실종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함이었다. 10년 넘게 세계 각국의 100여명 관련자와 자료를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북경인’이 과연 어느 곳에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미국인과 일본인일 것이다.”
잃어버린 조상을 되찾겠다는 중국인들의 뼈에 사무친 일념과, 고고학계 배후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 양상은 온전한 역사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심규호 유소영 옮김, 원제 ‘尋N北京人(심조북경인)’(2001).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