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외화내빈' 코스닥시장 표류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8시 24분



지난주 코스닥시장은 겹경사를 맞았다.

코스닥 등록기업이 시장 개설 5년반 만에 700개사를 넘어섰고 올해 코스닥지수 상승률이 세계 증시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발표가 나온 것.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외형에 불과하다. KTF(구 한통프리텔)나 국민은행 등 ‘거래소급’ 종목을 빼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관심을 갖는 코스닥 종목은 거의 없다.

개인투자자들은 아직도 코스닥 중소형 종목을 ‘한 방만 터지면’식의 투기심리로 대하지 중장기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는 코스닥시장의 한계와 증권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자세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코스닥 시장의 현실〓코스닥지수의 올해 상승률은 세계 최고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13일까지 지수 상승률이 42.24%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코스닥시장의 ‘실력’은 전혀 다르다. “장기투자를 권할 만한 종목은 20개 안팎”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700개 종목 중 매출의 대부분이 삼성전자, KT(구 한국통신), SK텔레콤 등 대기업에 집중돼 있는 반도체 통신 ‘장비 회사’들이 100개가 넘는다. 독자적인 실력과 다변화한 매출구조를 가진 회사는 몇 안된다.

시스템통합(SI)이니 솔루션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의 기업 중에서도 자체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외국 기업의 기술을 사와 국내 현실에 맞게 수정해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소프트웨어 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전문가는 “새로 시장에 등록되는 기업의 적정 주가를 뽑아보면 1000원 안팎으로 나오는 회사가 대부분”이라며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

신한증권 박효진 투자전략팀장은 “지수가 2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지만 지금도 분석을 해보면 주가가 고평가된 기업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책임감 없는 전문가〓이달초 한 애널리스트가 후불식 교통카드 개발업체 씨엔씨엔터프라이즈에 대한 6개월 목표주가를 당시 주가(1만1000원)보다 2배가 높은 2만5600원으로 제시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전문가는 “씨엔씨는 실력도 없고 기술도 대단찮은 회사여서 아예 의견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매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 연구원은 “투자자의 관심이 크지만 내용이 시원찮은 경우 ‘매도’ 추천을 내고 싶지만 코스닥에서는 이런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보안업종의 대장주로 꼽히는 A회사 주가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답변을 꺼린다. 사석에서는 “그 회사의 지금 주가는 거품”이라고 단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언급하기 싫다는 태도다. 두 경우 모두 해당 회사와 투자자의 항의가 두렵기 때문.

전문가들이 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팀장은 “전문가들의 소신 없고 소극적인 태도가 코스닥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인 ‘묻지 마 투자’를 부추기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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