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엔저 비상'…기업 외환위험 관리실태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8시 21분


《최근 엔화가치가 연일 약세를 보이면서 전자 철강 조선 등 국내 주요 수출업체들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각 기업은 엔화약세가 굳어질 경우 내년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기업 중 절반가량이 환율변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장사를 잘하고도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엔저(低)’가 올 때마다 몇 차례 곤욕을 치렀던 주요 대기업 가운데는 철저한 외환관리시스템을 갖춰 환율변동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갖춰놓은 곳이 적지 않다.》

▽주요 기업의 외환관리 실태〓삼성전자는 외환관리팀을 별도로 운용해 수입과 지출, 부채의 외화-원화 비율을 5 대 5로 유지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있다. 예를 들어 1억 달러의 수입이 생기면 이 가운데 5000만달러는 그대로 달러로 보유했다가 나중에 달러결제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원화로 바꿔 보관하는 방식이다.

또 달러당 원화환율이 1000원으로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할 경우에도 각 사업부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분기별로 점검한다.

장일형 삼성전자 전무는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을 아주 보수적으로 잡았다”며 “현장 주문에서부터 구매 설계 제조 마케팅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전산으로 재무전략과 연계해놓았다”고 밝혔다.

수출비중이 높은 현대자동차는 독립적인 위험관리위원회를 두고 연간 18억달러가량을 외환관리자금으로 운용한다.

가령 내년 3월에 받을 1억달러의 매출채권이 있다면 이중 30%인 3000만달러를 외환 파생상품 거래에 사용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원희 현대차 국제금융팀장은 “회사의 외환표시 매출채권이나 부채 등 현금흐름에 따른 환(換)위험을 계량화해 대처하므로 환율변동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선물환과 옵션 등을 이용해 달러수입과 지출분의 차이에 대해 꾸준히 헤지(위험회피)한다. 허성 LG전자 상무는 “달러의 수입과 지출을 적절히 조정하고 외화 차입금은 다양한 통화로 분산시켜 놓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엔화 약세에 대비해 수출물량에 대해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놓았다.

포스코는 10월부터 리스크관리시스템을 도입해 1년 동안 발생가능한 외환수지 등을 추정해 환율변동 위험을 헤지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엔화 부채가 900억엔가량이어서 엔저가 오히려 득이 된다”며 “연 200만t 정도인 대일 수출물량은 선물환을 걸어놓았다”고 밝혔다.

▽그래도 엔화약세는 ‘악재’〓아무리 외환관리로 환손실을 줄이더라도 국내 기업들엔 엔화약세가 걱정스럽다. 김동각 대우조선 이사는 “엔화환율이 달러당 130엔까지 치솟으면 우리 조선업계가 수주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기천 한국자동차연구소 과장도 “달러기준으로 엔화가치가 1% 떨어지면 한국 자동차수출은 0.42% 감소한다”며 “다만 엔화환율 변동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시차가 6개월 정도 되므로 악영향은 내년 하반기경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마인드가 중요〓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이에 따른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상당수 경영자는 환관리에 따른 비용 지불에 소극적이라고 외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해근 산업은행 금융공학팀장은 “안정적인 기업운영을 위해서는 환리스크 관리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최고경영자의 의식전환과 실무자로의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며 “최근에는 기업의 환위험을 관리해주는 컨설팅회사도 생겨나 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최영해·박정훈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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