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스타탄생 뒤엔
'그림자 부정' 있었네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31분


“애썼다.”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다섯살짜리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뒤 10여년간 한결같이 뒷바라지해온 아버지가 프로기전 타이틀을 따낸 아들에게 건넨 축하의 말은 그것 뿐이었다.

11일 오후 9시반 서울 한국기원 특별대국실. 박카스배 천원전 도전 4국에서 박영훈 2단(16)이 10시간의 사투 끝에 윤성현 7단에게 287수만에 흑 4집반승을 거두며 3대 1의 전적으로 생애 첫 타이틀을 따냈다.

89년 이창호 9단이 14세에 타이틀을 따낸 것에 이어 두번째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 입단한지 만 2년만에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날 박 2단의 아버지 박광호씨(SBS미 대표이사)는 서둘러 직장을 마치고 오후 6시부터 한국기원 검토실에 나와 폐쇄회로 TV로 비춰지는 아들의 대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아들을 프로기사로 대성시킨 아버지들의 열성, 즉 ‘바지바람’을 얘기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아들에 대한 기사와 박 2단이 아마 3급 시절부터 둔 5000여판의 기보를 모두 모아놓았다. 또 1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에 대한 바둑일기를 써왔다. 주요 대국이 있기 전날엔 상대 대국자를 면밀히 분석해 아들과 토론하고 20∼30분간 머리 안마까지 해줬다. 그가 아들에게 쏟은 정성을 이야기 하라면 책 한권 분량이 부족할 정도.

“가장 괴로웠을 땐 입단대회에서 8번이나 낙방했을 때죠. 바둑으로 대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시 바둑계 일부에선 박씨의 고집으로 박 2단이 한국기원 연구생에서 자퇴하는 바람에 입단을 못한다고 수근거리기도 했다.

“한국기원 연구생 제도의 장점도 있지만 제 생각엔 연구생 끼리의 경쟁이 너무 지나쳐 이기는 바둑만 두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봤습니다. 다른 세계, 즉 순수 아마추어 강자들과 부딪치면 바둑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박씨의 생각대로 박 2단은 99년 12월 입단의 관문을 뚫은 뒤 순풍에 돛단 듯 좋은 성적을 냈다. 입단 첫해인 지난해 배달왕기전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날 박씨는 박 2단이 승리를 거두자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나눠줬다. A4 용지 5장 분량의 이 자료에는 아마추어 시절 수상경력과 프로 입단후 주요 대회 성적, 올해 대국 일지 등 상세한 자료가 수록돼 있었다.

“이제 영훈이가 타이틀을 땄으니 일일이 뒷바라지 해온 제 역할도 끝난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이상 제가 해줄 건 없고 아들의 건강관리에 신경쓸까 합니다.”

<서정보 기자>suhchoi@donga.com

◆패 해소 백14 통한의 패착…팽팽하던 형세 균형 깨져

형세는 아주 미세하다. 흑을 든 박영훈 2단이 우상귀에서 흑 1부터 5까지 귀의 특수성을 이용해 패를 낸 장면. 백은 흑 13의 팻감을 불청하고 백 14로 패를 해소했지만 이게 패착이었다. 백은 패를 계속할 것이 아니라 일단 흑 13의 팻감을 받은 뒤 흑이 패를 딸 때 ‘가’로 물러서야 했다. 굴복 같지만 팻감이 없는 백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 흑 15로 하변 백진이 크게 뚫리고 흑 ‘나’로 들여다보는 뒷맛까지 남아서는 미세하던 형세가 반면 10집 이상으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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