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모던의 완성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28분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1,2)/볼프강 벨쉬 지음 박민수 옮김/414~418쪽 각권 1만7000원 책세상

모더니즘의 종말을 외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언제부턴가 다시 ‘근대성’의 담론만 무성하다.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끝났는가?

유럽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논객 중 한 사람인 저자는 이미 1990년대 초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을 주장하는 유럽의 상황을 보며 “올 것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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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임무는 모더니즘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을 완성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처음 변화를 시도할 때는 생소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필요했지만 그 변화가 모더니즘 속에 스며들어 익숙해지면 더 이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대체 무엇이었는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초판이 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와 전망을 가장 정확히 제시한 책 중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논쟁을 이끌었던 논객들 중에서도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을 가장 철저하게 옹호한 편에 속한다.

저자가 일관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모더니즘의 획일성을 뒤흔드는 ‘다원주의’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의식과 경계, 디지털과 신화를 적절히 짬뽕한 후 시뮬레이션과 감성주의와 뉴에이지 따위를 겸비해 놓으면 포스트모던한 다원주의의 히트작이 완성되는 것인가?

저자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혼잡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엄밀한 포스트모더니즘’을 구분한다. 엄밀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사태를 범벅으로 반죽하여 하찮은 것들로 바꿔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다양성을 첨예하게 부각시키고 강화하며, 이들을 서로 충돌하게 하고 다시 소통하며 공존하게 만든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가 후기산업사회에서 일부 사상가들에 의해 느닷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파스칼과 칸트를 거쳐 하버마스, 푸코, 로티, 데리다, 들뢰즈, 비트겐슈타인 등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흐름 속에 합리적인 다원주의의 사상 전통이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이전에는 비동시적으로 각 지역에 분산돼 있던 다원적 현실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하나의 현실 속에서 동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됐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현실에 주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동시적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이성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이성’의 고전적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성의 진정한 기능은 타자를 배제하고 자신의 정당성만을 증명해 내는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한 합리성의 형식들 사이의 교류와 논쟁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런 다양성들이 가로지르며 공존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심미적 사유’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다양한 매체에 의해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사라지고 예술과 과학과 생활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감성과 지각에 주목하는 심미적 사유야말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유라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거대한 맥락 속에서 전통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어주는 저자의 이 책은 봉건과 근대가 병존하는 상황에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뒤섞인 ‘복합 근대’의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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