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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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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는 모두가 잘 아는 대로 후천성면역결핍증이다. 생후에 어떤 연유로 감염돼 모든 질병에 대한 면역기능이 사라지는 증세다. 인체가 자체 방어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외부의 각종 바이러스나 세균의 공격에 대해 무장해제를 당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여러 상황들을 보면 현 국가권력이야말로 바로 에이즈에 걸린 인체와 같은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를 인체에 비유하면 국가권력의 집행기관이자 각종 사회악으로부터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검찰과 국정원은 인체의 백혈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검찰이 이른바 ‘3대 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을 축소수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척결해야 할 사회악인 ‘조폭’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뒷배경이 됐던 사례마저 드러났다.
국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조직의 일부 고위 간부들 역시 뇌물을 먹거나 각종 권력형비리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잇따라 드러났다. 백혈구가 바이러스를 막아내기보다 스스로 바이러스화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깨끗해야 하고 올곧은 사명감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할 조직인 검찰과 국정원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이유로 인사의 편중이 지적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특정지역 인물들이 이들 조직의 요직에 대거 임명됨으로써 조직의 자기 점검과 자정기능이 위축된 결과다.
권력자가 검찰과 국정원 요직에 이른바 ‘안심할 수 있는 동향 인물’을 앉히는 이유는 권력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러한 기대대로 된 경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았다. 권력자와 같은 지역 사람이라는 방심과 자만은 필연코 부패를 낳으며 권력집행기구의 부패는 권력 그 자체에 대한 경보시스템을 해제해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권력이 면역결핍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에이즈는 불치의 병이지만 그동안의 연구 성과로 병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고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이즈 환자들에게 △먼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운동과 영양섭취에 최선을 다하며 △과음 과로 등 무리를 피하라고 권하고 있다.
현 정부와 검찰 및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하고 무난하게 마무리할 기회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잘못한 것이 없으니 못 물러난다’거나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무리수를 피하는 게 그나마 최선의 길이 아닐까. 국회의 검찰총장 출석 요구에 대한 검찰의 대응은 국민에게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에이즈 환자의 ‘자포자기’가 연상될 정도다.
<정동우 사회2부장>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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