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파라과이 월드컵 대표팀

  • 입력 2001년 11월 9일 11시 20분


2002 월드컵 남미 예선은 브라질의 위기, 에쿠아도르의 약진, 칠레와 콜롬비아의 부진, 아르헨티나의 독주 등 몇몇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을 낳으며 이제 2년간의 그 대장정의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이 속출함으로써 남미 축구의 지상도에 많은 변화가 생겨났지만, 예선 시작에서부터 일반의 기대에 결과로서 보상하고 있는 두 나라의 대표팀이 있다면, 그것은 월드컵 본선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의 독주를 막아낼 수 있는 전력이라고 평가 받는 아르헨티나와 화려하지 않지만 탄탄한 전력으로 조용히 ‘My Way’를 지켜왔던 파라과이 이 두 나라의 대표팀일 것이다.

이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본선 직행 싸움의 결과만이 남아 있는 남미 예선이기에 예선 통과국들의 객관적인 전력을 하나씩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오늘은 ‘칠라베르트’로 대표되는 파라과이 월드컵 대표팀편이다.

파라과이는 월드컵 역사 동안 본선 무대를 모두 5번(1930, 50, 58, 86, 98 ? 4승 5무 6패) 밟았지만 2회 연속 출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럼비아 등 축구 강국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남미에서 파라과이는 두드러진 성적을 낼 수 없었고, 여전히 한국 같은 축구 변방의 나라에게도 한번쯤 해볼만한 상대로 치부되는 남미의 그저 그런 국가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만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파라과이와 붙게 된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은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팬들의 일방적인 환상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보여 주었던, 파라과이의 전력은 강했고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선수들과 좋은 성적으로 2년간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60, 70년대 들어서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던 파라과이는 드디어 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얼굴을 보이게 되고, 28년 만에 진출한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칠라베르트’가 지휘하는 막강한 수비진을 바탕으로 파라과이는 다시 한번 불가리아, 스페인, 나이지리아가 속해있던 ‘죽음의 조’에서 살아 남아 16강 관문을 뚫는 쾌거를 이루었다. 예선전에서의 실점은 3-1로 이겼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오루마”에게 뺏겼던 골이 유일했으며, 불행히도 16강에서 ‘프랑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블랑’의 골든 골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성적표는 더욱 화려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0-1 파라과이 패, 골든 골: 블랑) 비록 ‘지단’이 빠진 프랑스였지만 파라과이 선수들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월드컵에서의 첫 번째 골든 골의 희생양이 되며 주저 앉아야만 했다. 당시 그들의 전략은 승부차기로 끌고가 ‘칠라베르트’의 수비력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칠라베르트’와 ‘바르테즈’의 승부차기 결투를 볼 수 없었다. FIFA의 ‘리뷰’란을 보면 공격력만 갖추었으면 트로피 컨텐더가 될 수도 있는 팀이라고 당시의 파라과이를 평가하고 있으니, 파라과이의 수비벽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출전국 명단이 거의 결정 난 지금, 이제 파라과이는 역사상 최초로 2회 연속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여전히 투터운 수비진에 ‘산타 크루스’라는 신예 골게터의 등장으로 매서워진 공격력마저 장착하고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미 예선 2위라는 성적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남미 월드컵 예선 기간 동안 최고의 화두는 ‘브라질의 침몰 가능성’이었다. 비록 최 약체인 베네수엘라와의 홈 경기를 남겨 놓고 있기는 하지만, 최강 브라질이 한국으로 오는 길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브라질이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FIFA 관계자들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데, 이 비극적인 시나리오의 최초의 제공자가 바로 파라과이 대표팀이었다. 예선 4라운드에서 흔들리고 있던 브라질을 홈으로 불러 들인 파라과이는 최강자 브라질이 동네북으로 전락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2-1 파라과이 승. 이 패배를 기점으로 브라질의 혼란은 가중되기 시작했으며, 파라과이의 자신감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칠라’ and ‘베이비 골’

파라과이 대표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칠라베르트(스트라스부르그)’가 이끄는 수비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골 넣는 골키퍼라는 명성과 험상궂은 인상으로 유명한 칠라베르트는 축구팬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남미 최고의 골키퍼이고 이 강력한 카르스마를 지닌 골키퍼와 호흡을 맞추는 수비진은 98년에 이미 그 진가를 충분히 보여 주었다. 아얄라(리베르 플라테, Arg), 가마라(플라멩고, Bra) 두 센터 백 콤비는 98년 당시 최고의 센터 백 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들었으며, 당시의 수비 라인인 아르세(팔메이라스, Bra)와 사라비아(리베르 플라테, Arg), 카니사(라누스, Arg) 역시 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노장 수비수들로 구성된 파라과이의 수비 라인은 경험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채 여전히 파라과이의 최후방을 견실히 지키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파라과이의 약진이 예상되는 점은 이런 탄탄한 수비진에 ‘파라과이의 희망, 산타 크루스(81년생, 바이에른 뮌헨)’라는 걸출한 신예 스트라이커가 보강된 공격진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던 산타 크루스는 분데스리가 진출과 남미 예선을 통해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며 파라과이 국민들이 2002년 5월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월드컵을 통해 파라과이에서 스타가 탄생된다면 그 주인공은 분명 산타크루스일 것이다. 그의 게임을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곱상하고 잘생긴 외모와는 다른 강력한 스트라이커로서의 산타크루스를 기억할 것이다. 밀리지 않는 몸싸움, 골잡이로서의 움직임은 향후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대형 스트라이커의 출현을 기대하게 끔 한다.

산타크루스가 아직 기대감을 던져 주는 신인이라고 한다면, 예선 16라운드까지 6골을 기록한 노장 ‘카르도소’의 존재는 파라과이 공격진에 무게감을 실어 준다. 우리나이로 월드컵에서는 32세가되는 카르도소지만, 보카(Boca Juniors, Arg)가 바이에른 뮌헨과의 ‘도요타 컵’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 수혈을 추진할 정도로 그의 기량은 이미 검증 받은 상태이고 원숙미를 더해가고 있다. 공격력만 보강이 된다면 ‘우승권에 가까운 팀’이라는 파라과이기에 산타 크루스와 카르도소, 투톱이 호흡이 맞추고 있는 그들의 현재 모습은 다른 팀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파라과이 공격진에 무게를 실어주는 선수 한명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산타 크루스’와 ‘카르도소’의 투톱을 지원하는 미들필드 진을 이끌고 있는 사라고사의 키맨(keyman) Toro(토로, 황소) ‘아쿠냐’가 바로 그 선수다. ‘빌라르도’와 함께 아르헨티나 축구의 양대 감독으로 일컬어 지는 ‘메노티’와의(인데펜디엔테, Arg) 기억을 가장 소중히 생각한다는 이 힘과 기술을 겸비한 미들필더는 남미 최고의 클럽 보카에도 활약을 했으며, 97년 스페인으로 진출 이미 사라고사와 대표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레알 사라고사에서 5시즌을 거치는 동안, 아쿠냐는 발렌시아에서 ‘멘디에타’의 대안으로 점찍을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고, 그의 별명이 말해 주듯, 황소 같은 힘과 카리스마로 파라과이의 중원을 책임지고 있다.

‘산타 크루스’의 등장, ‘카르도소’의 원숙함, ‘아쿠냐’의 존재는 뛰어난 수비 조직력과 골 넣는 골키퍼인 ‘칠라베르트’ 중심의 팀이었던 파라과이를 공격과 수비가 조화를 이루는 강팀으로 성장 시켜놓았다. 16라운드까지의 성적표만을 보면 파라과이는 ‘28득점, 16실점’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아르헨티나의 32득점에 이어 브라질과 같은 수의 골을 기록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제 더 이상 파라과이는 수비 위주의 팀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남미 최강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대적한 예선 성적(1승 2무 1패, vs. 아르헨티나 2무, vs. 브라질 1승 1패)은 파라과이 대표팀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한 파라과이 대표팀의 2002 월드컵 성적에도 변수가 존재한다.첫 번째는 8일 발표된 ‘칠라베르트’의 징계 소식이다. 지난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카를로스’에게 침을 뱉어서 발생한 이 징계의 결과로 ‘칠라베르트’는 예선 마지막 두 경기와 월드컵 본선의 조별 예선 전 두 경기에 출장할 수 없게 되었다. 팀의 맏형으로서 칠라베르트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징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칠라베르트’ 측의 항변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모르지만 파라과이 대표팀으로서는 불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변수는 바로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의 연령이다. 주전 대부분이 30을 넘긴 노쇄한 대표팀으로서 과연 한국의 6월 더위를 어떻게 이겨나갈 지가 2002년의 파라과이의 성적을 좌우할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프로 선수로서의 몸 관리에 철저한 선수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우일 수도 있지만 6월의 더위와 토너먼트 일정은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 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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