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을 선택하고 집행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였다. 그러나 준비 안된 밀어붙이기로 생긴 파장과 혼선에 대해서는 늘 ‘남 탓’으로 일관해왔다. 이를테면 평생 교단을 지켜온 교원을 적으로 간주하고 학원을 분열시킨 교육개혁, 교원 수급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강행한 정책이 모순에 직면하고 비판의 도마에 오르자 정부는 수구 보수의 반발이라거나 주요언론의 발목잡기로 몰아붙였다.
의약분업 의보파탄 사태 역시 이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정책의 결과였다. 의사 약사가 반발하고 재정이 파탄 나며 국민이 불편해진 모든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는, 제대로 내다보고 헤아리지 못한 정부 탓이었다. 그럼에도 ‘내 탓’을 자인하고 바로잡는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대북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업적과 모양새에 치우쳐 국민적 합의를 도외시한 채 서두르다 국민으로부터는 퍼주기라는 비난을 사고, 북한으로부터는 배신만 당하게 된 사태에서도 김 대통령 정부는 자책(自責)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오직 개혁 대상 혹은 수구측의 저항 탓이고, 언론의 비판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언론을 겨냥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엄청난 액수의 세금 부과 및 형사처벌이라는 채찍질로 대응했다. 연원과 본질을 도외시하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식의 정치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리 없다. 그 민심 이반이 재보선에서 확인되자 집권당 내에서부터 쇄신과 민심 회복의 외침이 울리고, 그에 답하는 과감한 쇄신책이 늦어짐으로써 국정은 위태롭게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 내부의 움직임을 단순한 민주적 정당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불가피한 과도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권 내홍이요,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는 위태로운 통치권 누수다. 본질적으로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민심을 잃고 비전을 보이지 못하는 데 따른 혼돈의 단면인 것이다. 절박한 상황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