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ML 통신]패배는 짧고 교훈은 길다

  • 입력 2001년 11월 2일 00시 44분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경기였다. 경기전 밥 브렌리 감독과 밥 웰치 투수코치는 “너만 믿는다. 언제든 투입할테니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로 김병현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

애리조나 코칭스태프의 평가대로 이날 김병현의 공은 열흘을 쉰 투수라곤 믿어지지 않게 그 어느 때보다 위력적이었다. 양키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뉴욕 팬중 일부는 김병현이 8회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자 일찍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러나 김병현의 볼 배합은 좋지 않았다. 8회 세 타자와 모두 풀카운트까지 가는 실랑이를 했다. 1점차라면 몰라도 2점차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언터처블 직구인 업슛을 놔두고서 왜 버리는 공으로 볼을 던졌는지 의문이 생겼다.

김병현은 9회에도 폴 오닐과의 승부에서 풀카운트까지 간 뒤 빗맞은 안타를 내줬다.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뼈아픈 동점홈런을 맞은 공은 바깥쪽 꽉 찬 공이었다. 결코 실투는 아니었지만 이때에도 손가락 끝에 좀더 힘을 모으는 집중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동점이 되고 난 다음. 호르헤 포사다에게 볼넷을 준 게 좋지 않았다. 여기서 끝냈어야 10회에는 오른손 하위타선과 상대할 수 있었다.

10회 투아웃 이후에도 김병현은 손가락 물집을 점검하는 등 몸에 이상이 있었지만 코칭스태프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날 경기가 어떤 경기인가. 팀 전체의 운명이 걸린 경기가 아닌가.

결국 김병현은 그의 선수생활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너무나 뼈아픈 교훈을 안은 채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뉴욕에서>

koufax@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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