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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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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떠한 글도 진리를 밝히고자하는 정열이 없이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정열이 뒷받침하고 있는 책들이다. 다만 그것은 진리에의 정열로 승화되고 그 기율에 동화되어 스스로의 감정적 근거를 잘 드러내지 아니할 뿐이다.
이문영 경기대 석좌교수의 이 저작은 그 제목, 특히 그 부제인 ‘미국행정, 청교도 정신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95개조’가 시사하는 바와는 달리 정열적 사유의 소산이다. 그러면서 정열과 사유의 긴장에서 정열이 더 넘쳐난다. 그런데 이 교수의 책에 드러나는 정열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정치를 논하는 맥락에 개인적인 사연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놀란다. 그러나 이 책이 개인적인 것은 그러한 사연 때문만도 아니다. 또 그 정열이 개인적인 삶의 이해 관계에 이어져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 정열은 아마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본래적 삶’에 이르려고 하는 정열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삶에 이르고자 하는 실존적 관심에서 나온다.
이 관심의 뿌리는 기독교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독교는, 스스로를 제도적 권위를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하느님 앞에 서는 것으로 파악하는 루터나 칼뱅의 개신 기독교이다. 그의 정치적 신념도 여기에 이어져 있다. 그의 출발점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존엄성이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 있거나 스스로의 진리 속에 있다. 그것은 제도에의 예속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에 얽혀 있는 개인의 속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리와 이웃에 대한 의무를 내용으로 한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산다. 그 사회는 이웃간의 협동에 기초한 사회이어야 한다. 이웃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이다. 약자를 포함한 협동적 사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변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증오나 시기보다는 사랑에 기초한 비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신앙적이고 정치적인 신념의 특징은 그것이 합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열로써, 행동으로써 체험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신학자들이 카이로스라고 부르는 계시의 순간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내적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주로 이야기되어 있는 것은 정치이다. 그것은 필자의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정치적 체험이외에 여러 사례들을 통하여 이야기된다.자주 언급되는 것들은 논어, 맹자, 성경, 미국의 청교도사, 미국사, 미국의 행정 제도, 루터, 이솝우화, 호손의 주홍글씨,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체로 그 자체로보다는 신념의 예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성서해석의 우의적 방법이 많은 사례 해석에 적용된다. 자료와 그 해석의 특이함에서 개인적 편향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뜨거운 심정에서 나오는 믿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이문영 교수의 신념은 적어도 사회의 이상에 관한 한 그의 판단을 늘 바른 것이 되게 한다. 이것은 양심적 행동인으로서의 그의 삶에서도 증명된다. “사람으로 변하여 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감정”은 제도와 이념을 초월하여 많은 것을 제자리로 인도해 간다.
김우창(고려대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