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래도 언론탄압 아닌가

  • 입력 2001년 10월 25일 18시 51분


현 정부 출범 후 2년8개월간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기자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기록’은 세무조사와 세금 추징, 대주주 구속 등이 특정 신문의 비판적 보도에 불만을 가진 집권측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언론사 세무조사는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 제기에 대해 줄곧 순수한 조세행정의 일환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를 지휘해온 전 국세청장도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해 왔다. 결국 거짓말을 해온 셈이다.

저자는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란 책의 한 부분에서 여권 핵심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당시 집권층 내부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편중 인사, 경제 위기 등 3개 신문(동아 조선 중앙일보)의 정권 비판 수위가 높아지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점점 신경질적이 돼 갔고 청와대 안에서는 ‘언론이 이럴 수는 없다’ ‘(언론 개혁을)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될 것’이라는 등 언론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심지어 특정 신문을 지적하며 ‘당장 작살내겠다’거나 ‘두세달 안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 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올해 초 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이 나왔고 곧바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상황은 바로 그들의 ‘계획’ 그대로다.

그런데도 언론 탄압은 없다고 강변하는 집권측의 주장을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도 청와대 대변인은 책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언론을 ‘작살’내거나 ‘뒤집어 버리는’ 대상으로 여기는 집권측의 발상과 표현이 그처럼 천박하고 감정적인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특히 정당한 법 집행이라도 거기에 감정이 가득 실려 있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라 정권의 물리적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 착수 후 한 여권인사가 ‘앞으로는 정권에 대한 기사를 비판적으로 쓰든 호의적으로 쓰든 신문사 마음대로다. 대신 우리는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한 발언은 이 같은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집권측은 언론사 세무조사는 결국 ‘언론사 길들이기’가 아니라 ‘언론사 타격용’이었다는 저자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언론은 결코 타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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