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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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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검사동일체 원칙에 근거한 상명하복의 폐지가 빠졌다는 점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마지못해 급조한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특별감찰 조사 결과나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의 뇌물수수 사건의 석연찮은 처리 등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요인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법무장관으로서는 어렵게 내린 단안이다. 내부에서는 복받치는 울분과 처절한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채찍질과 격려가 필요할지언정 재를 뿌릴 일은 아니다.
현 정부는 총풍, 세풍사건이나 언론사 탈세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유능하고 정치적 센스가 있는 검찰에 기대를 가졌겠지만, 실은 검찰 문제로 발목을 잡혀 끌려 다니다가 아까운 정치적 에너지만 낭비했다. 1999년 2월 중앙부처 경영진단의 일환으로 법무·검찰의 조직진단 및 개편안을 제시했던 필자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대목이다.
당시 진단팀이 제시한 조직혁신 방안을 백안시하면서 사법개혁추진위라는 개혁 완충장치를 만들어 말 잔치만 벌이면서 개혁을 희석시키고 저지한 검찰의 전략이 성공이었다면, 검찰의 의도를 알면서도 손을 들어주고 충성의 반대급부를 기대한 정부의 선택은 최대의 실책이었다. 검찰의 지휘계통을 호남인맥으로 바꾸는 일이 그리도 절박하고 능사였는가. 그리고 오늘 이 시점에서 법무·검찰의 처지에 비춰 볼 때, 검찰의 성공이란 것도 결국 부분적 성공, 시간지연의 불안한 성공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이번 검찰개혁안은 긍정적인 측면 못지 않게 개혁의지 자체를 의심케 하는 부정적 요소도 없지 않다. 특별수사검찰청 신설안이 그런 예이다. 인사와 예산면에서 검찰 조직에서 독립한 특별수사검찰청을 설치해 정치 관련 의혹사건을 수사하게 한다는 이 방안은 상설 특별검사제와 비슷한 효과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의 폐지나 검찰 고위직의 인원 감축 등 상응한 검찰조직의 개편이 수반되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는 검찰조직의 확대개편과 다를 바 없다. 검찰개혁안의 결과가 조직 및 검사장 정원 확대 등 실속 챙기기라면 국민이 어찌 수긍하겠는가. 전체 사건의 1%도 안 되는 정치사건 처리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특별수사청 역시 검찰과의 문화적 연대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터이고, 벗어난다고 해도 검찰의 이원적 지휘체계에 따른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 또 특별수사청을 신설할 경우 중복되는 대검의 부서를 폐지하고 그만큼 검찰 고위직 인원을 줄여야 하며 특별수사청의 장 역시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해야 한다. 이 기회에 위로 갈수록 일에 비해 조직만 비대해진 검찰조직의 기형적 단계구조를 혁신하는 방안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제도뿐만 아니라 실천의지가 문제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가령 검찰인사위원회에 참여할 민간위원으로 누구를 어떻게 위촉할 것이며, 그 기구를 어떻게 운영하고 인사결정 과정에서 비중을 얼마나 둘 것인가, 검사에게 항변권을 부여한다지만 조직관리나 인사 측면에서 검사의 이의 제기권과 독립성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의 문제, 일선 검찰조직의 과중한 업무부담 해소 방안 등 실천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후속조치들이 적지 않다.
검찰개혁안에 대한 반응 여론 가운데 단연 우세한 의견은 미흡하지만 역시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정권에서도 통할 정권중립적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법무부나 검찰은 자신이 내놓은 개혁안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방안이라며 배수진을 칠 것이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찾겠다는 개방적 실천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 최후통첩은 지금 법무부나 검찰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이 건강하게 다시 서기를 기대한다.
홍준형(서울대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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