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이부부의 세계 맛기행]스파게티도 일본식으로 '화풍(和風) 스파게티'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6시 35분


이런 말 하면 좀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일본인을 모방의 천재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네들의 모방이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실정과 환경, 문화에 잘 맞도록 갈고 다듬어서 결국에는 완전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일본인을 그냥 남의 흉내나 내는 민족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지금의 일본을 만들어 낸 그들만의 노하우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음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더라구요. 아주 예전부터 전해진 음식이 아니라 역사가 오래지 않은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일본 음식'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화풍(和風)스파게티'입니다.

맨날 우동, 덮밥만 먹기가 지겨워 오랜만에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어볼까 하고 도쿄의 번화가를 기웃거리던 중 우리는 진열장 가득 스파게티를 전시해 놓은 한 레스토랑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의 식당들은 입구에 모형물을 전시해놓은 곳이 많아 음식을 고르기 아주 편하지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그 스파게티들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더라구요. 우리가 알고 있는 '볼로네즈', '카르보나라', '봉골레' 같은 이름은 하나도 없고 모두 일본식 이름이 붙어 있는데다가 처음보는 그 음식 모형들도 상당히 맛깔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레스토랑 간판 아래에 조그맣게 '화풍(和風) 스파게티'라고 씌여 있는 겁니다. 화풍? 그럼 일본식? 스파게티가 일본식이면 제법 재미있는 맛이겠다 싶어 오늘은 이걸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많고 많은 스파게티들 중에서 그나마 우리가 좀 알만한 내용물이 들어간 것으로 주문했죠.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명란젓 스파게티'와 '간장소스 해물 스파게티'. '명란젓 스파게티'는 간장소스에 명란젓과 옥수수, 마요네즈를 첨가하여 그 위에 '향채와 김'을 뿌려낸 스파게티이고 '간장소스 해물 스파게티'는 마찬가지로 '간장소스'에 '연어,조개,새우,오징어 등'의 해물을 넣고 가쯔오부시(가다랭이를 말려서 대패로 밀은 것 같은 ...)와 김을 뿌린 스파게티였습니다.

맛만 보면 이것이 도대체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스파게티'인지 일본에서 아주 오래전에 부터 먹어 온 전통음식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이름 그대로 '일본풍'이었습니다. '명란젓 스파게티'는 짭짤한 소스에 씹을 때마다 명란젓이 톡톡 터지는 맛이 일품이고 '해물스파게티'는 싱싱한 해물에서 풍기는 바다내음과 일본음식 고유의 향기(아마도 가쯔오부시가 원인인 듯)가 어우러진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레스토랑의 메뉴에서 본 것만 해도 종류가 무척 많았는데 일반적인 이탈리아 스파게티점에서도 적어도 서너가지 정도의 '화풍 스파게티 메뉴'를 갖춰 놓고 있더라구요. 그런걸 보면 이제 '화풍 스파게티'는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모방해서 약간 변형한 한때의 유행이라거나 소위 말하는 '퓨젼 요리' 수준이 아니라 또하나의 새로운 일본 음식으로 불리울 수 있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 음식 중에는 '스파게티' 이외에도 많은 음식들이 원산지와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일본인 입맛'에 맞도록 변형되어 일본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돈까스'나 '카레'만 해도 그렇죠. '포크커틀릿'과는 전혀 다른 '일본식 돈까스'를 만들어내거나 원산지 '인도'와는 전혀 다르게 '일본식 카레'를 만들어 자랑스럽게 '카레 박물관'까지 만들어 놓은 걸 보니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그 대단한 능력이 얄미울 정도였습니다.

가슴아프게도 '기무치(김치)와 '비빈바(비빔밥), 가루비(갈비), 야끼니꾸(불고기)'도 이젠 한국음식의 아류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음식'으로 자리잡아 버젓이 체인점까지 내면서 장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마치 이 음식들이 자기들 것인 것처럼 자랑하고 놀라운 마케팅 능력을 발휘해서 전세계에 내보내겠죠? 물론 그렇게되면 세계의 다른 사람들은 김치와 비빔밥은 '일본음식'인지 알테고 맛도 원래 그렇게 달착찌근한 줄 알테고 말이죠...

화풍 스파게티를 먹으며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뛰어난 모방 능력이 놀라웠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도 빨리 받아들이고 내 몸에 맞게 재창조해내는 그 개방성과 실험 정신이 부러웠던 거죠. 우리는 진짜 우리 것인 '김치' 하나 우리것으로 만들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때에 말입니다.

☞ 어디서 먹나요?

우리가 간 곳은 'JR시부야'역에 내려 '109백화점'쪽으로 걷다보면 '맛의 8번가'라는 8층 건물이 나오는데 그 중에 8층에 자리 잡은 '五右衛門'이란 곳입니다. 일종의 퓨전요리라서 그런지 내부도 검은색을 사용해서 상당히 세련되게 꾸며놓은 전망좋은 레스토랑이었지요. 덕분에 호주머니는 먼지만 날리게 되었지만요. ^^;

☞가격

스파게티(대)+스프(계란국)+음료수 세트 혹은

스파게티(소)+샐러드+스프+음료수 세트에 1490엔 (1엔=우리돈 약 110엔)

화풍 스파게티는 밍밍한 일본 재료가 주가 되니 자극적이지 않아 사람에 따라 상당히 느끼하게 생각될 수도 있답니다. 저희는 음식 욕심이 많아 대용량 스파게티를 주문했었는데, 작은 스파게티와 샐러드 세트를 시킬걸 하고 금방 후회했었죠. 단무지 한쪽이라도 줬었더라면 좋았을텐데... -_-;

'김치' 생각나면 속터지는, 애국심에 불타는 꿈틀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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