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퇴출시대-하]"작전세력도 뿌리 뽑아라"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39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한국증권업협회 관계자)

“100명의 도둑놈을 다 잡을 필요가 있느냐. 질 나쁜 도둑 한 명만 잡아서 일벌백계(一罰百戒)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금융감독원 관계자)

코스닥 시장에서는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전세력이 창궐하고 있지만 시장 감시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증권업협회나 금감원의 속내는 이처럼 일반인의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 작전세력이 적당히 있어야 주가도 오를 수 있고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것까지 감리를 하기 시작하면 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코스닥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당국의 조사가 지나치게 잦거나 강할 경우 오히려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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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전세력의 ‘퇴출’ 없이는 코스닥시장이 건전한 투자의 장으로 거듭나기 어렵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감시 당국이 주가조작에 대해 사안별로 선별 처리하면서 철저한 근절의지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운만 나쁘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은 시장의 불건전성에 질려 장을 떠나고 외국인투자자나 기관투자가들은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감리를 담당하는 협회가 금감원에 혐의사실을 통보하고 금감원은 계좌추적과 관계인을 소환해 조사를 벌인 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지만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건수는 얼마되지 않는다. 금감원이 사실관계를 규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사법당국도 내부자정보 이용 등 죄질이 나쁜 경우가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의 정도가 심하고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대형 범죄자만 처벌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코스닥시장이 작전 천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감시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 있다. 미국 나스닥시장의 경우 1000여명의 회계사로 구성된 나스닥레귤레이션(NASDR)이 시장 감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감리인력은 고작 39명에 불과한 실정. 협회 관계자는 “감리인력을 단계적으로 60명까지 늘려갈 계획이지만 작전세력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금감원의 허술한 사후관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감원은 연간 주가조작 대상자 수백명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고 있지만 기소여부나 법원의 판결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조사와 수사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부 최도성 교수는 “협회의 감리와 금감원조사 검찰수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효율화해 종합감리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며 “민사적 처벌을 강화해 벌금 이외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부당이득은 곧바로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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