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2001프로야구 투수 3관왕 LG 신윤호

  • 입력 2001년 10월 8일 18시 54분


신윤호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투수 신윤호(26). 바로 앞에서 본 그의 이마와 입가에는 흉터가 여기저기 나 있었다. 그의 삶 또한 깊게 패인 상처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어둡던 시절을 뚫고 나와 한줄기 빛을 찾은 표정에는 미소와 여유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4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정규시즌의 마지막 경기인 LG와 한화의 경기가 벌어진 이날 노점상과 관중으로 흥청거리던 야구장 입구는 파장분위기속에서 썰렁했고 잔뜩 흐린 날씨 속에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한해를 마감할 때면 누구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듯 신윤호 역시 시즌 최종전을 맞아 남다른 감회를 떠올렸다.

△신데렐라

“시원섭섭하네요. 시작할 때 이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잘했기보다는 동료들의 도움이 컸죠.”

충암고 시절 유망주로 주목받던 신윤호는 94년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지난해까지 5시즌을 뛰는 동안 고작 2승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올해 ‘신윤호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졌다. 구원(32세이브포인트) 다승(15승) 승률(0.714)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동안 타이틀이라고는 근처에도 못 가봤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팀 내 최다인 70경기에나 등판해 팔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오히려 그는 “그동안 너무 쉬어 생생하다”며 “내일 당장 다음 시즌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큰소리.

이런 활약으로 신윤호는 올해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힌 데 이어 다음달 월드컵대회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 삼성 이승엽과 함께 최우수선수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최근 분위기는 고속 엘리베이터라도 탄 듯 1층에서 꼭대기까지 단번에 올라간 신윤호 쪽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

△시련

정상에 설 때까지 신윤호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아픔과 좌절을 겪었다. 야심만만하게 두드린 프로의 문을 열리지 않았다. 2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술독에 빠져 경기 구리 숙소의 기물을 부수고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사고뭉치로 전락했다. 어두운 기억을 되 내이던 신윤호는 “그 시절에 좀더 빨리 깨우쳤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설상가상으로 96년 11월에는 일반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 철원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다 허리를 다쳐 의가사 제대까지 했다.

△가족과 웨딩 드레스

끝 모를 방황을 거듭하던 96년 여름 신윤호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동갑내기 김민희씨와 결혼식까지 건너뛰고 살림을 차린 것. 이듬해 쌍둥이 딸(하늘, 샛별)이 태어났고 지난해 아들(효수)을 얻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신윤호의 어깨는 무거웠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올 시즌을 앞두고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그 어느 때보다도 훈련에만 전념했어요.” 신윤호는 요즘은 두 딸이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 야구 잘 한다고 자랑하고 있다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지난해 형님이 결혼한 뒤 그는 아내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올 연말에는 꼭 면사포를 씌워 주리라고. 11월11일 서울 군자동의 한 예식장에 예약까지 해뒀다. 그러나 국가대표 선발로 다시 내년으로 미뤄야할 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잘할 것 그랬죠.”

△신윤호 커피

잠실구장의 LG 김성근 감독의 방에는 신윤호가 갖다 놓은 캔 커피와 사탕이 있다. 1승할 때마다 감사 표시를 한 것이다. “감독님이 제가 20승하면 커피를 드신다고 했는데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네요.” 신윤호는 고교 2학년 때 팀의 인스트럭터로 부임한 김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고 자상한 지도를 받았다. 지난해 김 감독이 LG 2군 감독을 맡으면서 다시 만났고 어릴 적 스승 앞에서 재기를 꿈꿨다. 김 감독은 “올해 신윤호 없는 LG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칭찬했다. 신윤호 역시 “실패를 해도 격려와 자극을 아끼지 않은 김 감독님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새로운 시작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 잡는 데 8년 세월이 걸렸다. “반짝 스타가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그의 포부. 신윤호는 “어떤 상보다도 부상 없이 시즌을 모두 마친 데 의미를 두고 있다”며 “언제나 주위로부터 열심히 했다는 소리를 듣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성근 감독은 다양한 구질을 개발하고 포크볼 등 새 무기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윤호는 “제구력을 가다듬어야 하며 상대 타자가 내 폼을 읽지 않도록 노련미를 기르겠다”고 말했다.

◇신윤호는 누구?

△생년월일〓75년 5월15일

△출신교〓충암고

△신체조건〓1m82, 95㎏

△혈액형〓A형

△프로 데뷔〓94년(계약금 8800만원)

△올 시즌 연봉〓2700만원

△가족 관계〓아내 김민희씨(26), 쌍둥이 딸 샛별과 하늘(4), 아들 효수(1)

△취미〓PC게임, 음악감상

△좋아하는 음식〓닭도리탕, 제육볶음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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