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지문/집단 안전불감증

  • 입력 2001년 10월 6일 19시 10분


요즘 부쩍 의식하게 되는 모순 중 하나는 건물이나 시설이 견고하고 위험요인이 적은 나라 사람들은 안전에 민감하고, 도처에 위험요인이 많은 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안전에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국제회의를 조직할 때 특별 배려로 외국 학자들을 일류 호텔에 투숙시켰는데 비상구가 제대로 안되어 있다느니, 화재경보기가 미덥지 못해 보인다느니 해서 낭패스러운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항 같은 곳에서 하는 안전점검을 시간낭비로 생각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하는 안전점검도 개인적인 모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검색대를 통과할 때 미심쩍어 보이는 물건이 잡혀서, 또는 금속탐지기를 통과할 때 경고음이 나서 짐을 열어보라거나 주머니를 뒤져보라고 하면 짜증을 낸다. 그 바탕에는 ‘내가 테러범처럼 보이느냐?’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외국인은 세계적인 학자라도 안전검색에 짜증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검색요원이 관상학자도 아니거니와 테러범이야말로 관상학자도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위장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그러니까 철저한 안전점검은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측면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안전불감증이 두드러진 나라 사람들이 생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 기관들이 방문객에 대한 안전검색을 강화한 모양이다. 요즘 같은 때 미국 국민이 모두 안전노이로제에 걸렸다 한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비난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들의 안전검색을 한국민 전체에 대한 불신이나 모욕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속 좁은 일이다. 이미 미국 기관들은 한국인들에게 점거 방화 기물파괴를 당해본 경험도 있지 않은가. 미국에선 관공서가 아닌 사기업이나 기관도 방문객은 국적과 신분을 불문하고 반드시 자사 직원이 로비에서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다. 미국 기관의 안전검색을 불쾌하게 여기지 말고 우리의 안전의식을 좀더 강화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서지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영문과 교수)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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