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TV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글로벌 텔레비전'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9분


◇ 글로벌 텔레비전/크리스 바커 지음/403쪽 1만3000원 민음사

근대 이전에는 민족국가란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의 경우 단지 수 많은 도시국가와 봉건 영주들만이 존재했다. 근대 민족국가는 신문, 잡지, 소설책 등 인쇄매체의 결과물이다. 동일한 정보를 동일한 언어로 전달하는 정기간행물들이 도시국가의 한계를 철폐하고 민족국가라는 정치-경제-문화적 공동체를 이뤄냈던 것처럼, 글로벌 텔레비전 역시 민족국가라는 단위를 와해시키고 초국가적인 공동체의 발현을 만들어가고 있다.

호주 울런공대학 교수인 저자 크리스 바커는 글로벌 텔레비전을 정치경제학적 차원, 기술적 차원, 문화적 차원을 넘나들면서 설명한다. 호주, 네덜란드, 인도, 영국, 미국의 텔레비전 상황을 비교 분석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민족 문화적 배경을 지닌 수용자들의 능동적인 수용 방식을 살펴보기도 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바의 공론장의 기능을 텔레비전이 어느 정도 담당할 수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돌이켜보기도 한다.

저자는 책 이곳 저곳에서 “글로벌 텔레비전은 지구화되는 현대성의 내재적 본성에 의해 구성”되며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현대성의 지구화라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지구화는 아무도 항거 할 수 없는 거대한 대세이며 글로벌 텔레비전 역시 그의 일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 자신도 6장에서 인정하고 있듯이 매체야말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는 근본적인 계기이다. 따라서 오히려 지구화 자체를 글로벌 텔레비전을 포함한 여러 전지구적인 매체의 결과물로 파악했어야 했다.

지구화를 이야기하는 다른 많은 논객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지구화의 핵심으로 다국적 기업의 출현이나 초국가적 시장의 형성 등 경제적 상황에 주목한다. 그러나 근대 초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하나의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장은 전국적인 광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국적인 대중 매체가 생기고 난 후에야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햄버거의 시장 형성 역시 글로벌 텔레비전이나 할리우드 영화 등의 초국가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스스로 제시하는 많은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텔레비전을 초국가적 경제, 문화,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된 근본 원인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이미 형성된” 초국가적 경제나 탈현대성의 맥락에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번역은 대체로 성실하고 깔끔하게 된 편인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문장이 더욱 자연스레 읽힌다. 하지만 자연스런 책읽기를 방해하는 어색한 번역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예컨대 ‘circul-ate’는 ‘순환’보다는 ‘유통’으로, ‘collective’는 ‘집합적’ 보다는 ‘집단적’이라 하는 편이 나았다. 하종원 주은우 옮김. 원제 Global Tel-evision : AnIntro-duction(1997).

김주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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