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美, 테러 잠재울 능력있나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56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하기 몇 주일 전 캐나다의 한 TV 방송은 미국인들이 북쪽의 이웃 나라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예를 들어 하버드와 버클리대 학생을 포함해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 사스캐차완 지역의 고래잡이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곳은 육지로만 둘러싸인 내륙지방이었다.

평화와 고립 속에서 성장한 미국의 현 세대는 이제 이해하기 어려운 국제테러리즘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미국은 오랜 우방과 새로운 우방의 도움을 얻어 이 같은 도전에 맞서 일어서겠지만 이는 상당한 희생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귀하게 여기는 민주적 가치를 고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테러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모습은 영원히 바뀌고 말았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건물들에 대한 테러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무적(無敵)의 관념을 여지없이 흔들어 버렸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제 분노와 노여움을 접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냉정히 계산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추가 테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테러의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한국인들이 지난 50년간 그랬던 것처럼 취약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나의 경우엔 앞으로 계속 비행기를 탈 것이지만 난생 처음 가족들을 위해 가스마스크를 구입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생소한 역사와 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세계에 대해 무지했고 그것이 우리를 위태롭게 했는지를 깨닫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대해 첫 폭탄 테러를 자행했을 때 이것이 미국을 상대로 한 그들의 전쟁선포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제대로 깨닫는 데는 8년이나 걸렸다.

이번 테러사건은 60년 전에 있었던 진주만 공격과 비교된다. 미국의 현 세대는 미국의 한 TV 앵커가 ‘위대한 세대’라고 표현했던 제2차 세계대전 세대처럼 나중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미국은 이번에 국가가 아니라 테러리즘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이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거나 체포되고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러나 이는 마약과의 전쟁처럼 끝이 없는 싸움의 서막일 뿐이다.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테러를 억제하는 것이다.

새롭고 전례가 없는 이 같은 위협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마약과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 혼자서는 이번 새로운 전쟁을 벌일 수 없다. 성공은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미국인은 식량과 의복의 배급을 포함해 희생을 강요당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정부는 이번엔 경제침체에 미칠 영향을 불식하기 위해 국민에게 소비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엔 물질적 궁핍 대신에 민권 분야와 일상생활에서 희생이 따를 것 같다. 미국 정부는 곧 사찰과 심문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백악관은 국민에게 이슬람이나 아랍을 테러리즘과 동일시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촉구했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미국이 종교간의 충돌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처형된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테러범이 미국인이었다는 사실은 테러가 이슬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인처럼 미국인들도 의회의 당파싸움에 지쳐있기 때문에 테러사건 후의 초당적 협력은 신선했다. 위기 때엔 당파주의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비 미국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 토론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불행히도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는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선 불가피하게 후퇴해야 할 때에도 국민과 동맹국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미국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피터 벡(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국장)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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