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석 민심의 분노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42분


추석을 맞은 고향에서 나타난 민심은 분노와 우려로 압축됐다. 잇단 의혹 사건은 끝이 보이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많은 서민들을 화나게 했다.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추석 민심의 주조였다.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의 수위는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검찰 고위직들이 줄줄이 관련된 이용호(李容湖) 게이트는 검찰이 어떤 수사결론을 내리더라도 믿기 어렵게 됐다. 심지어 여당의원 입에서까지 썩은 검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경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고향을 지키는 부모형제들은 쌀값 하락을 걱정했다. 지방 도시의 작은 기업이나 가게들은 쌓아둔 물건이 팔리지 않아 음울한 분위기다.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야 할 수출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한국을 둘러싼 세계경제 여건도 아주 나쁘다. 그런데도 경제와 민생을 챙겨야 할 정치권은 정쟁으로 날을 지새며 오히려 민생 행정과 경제살리기에 부담을 준다.

올 들어서만 네 번째 장관이 바뀐 건설교통부는 난마처럼 얽힌 정치가 어떻게 행정을 위축시켰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보름짜리 장관이 있었는가 하면 스무날 만에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있었다. 건교부 직원들은 신임 장관 업무보고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실무에 밝은 장관이 꼼꼼하게 챙겼더라면 나라 망신을 사고 항공업계에 타격을 준 미국에 의한 항공안전 2등급 판정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DJP 공조로 장관을 나누어 갖다 보니 능력과 청렴도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DJP 공조가 허물어지자 이번에는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포상 성격의 승진인사를 하느라 건강이나 재산에 대한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출처 불명의 돈으로 공직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에 대한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기말과 경제난이 겹친 상황에서 현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걷잡기 어려운 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권력형비리 의혹을 숨김없이 밝혀내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경제와 민생을 챙겨야 한다. 추석 귀성을 통해 확인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해야만 서민들의 분노와 우려를 달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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