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호/이용호씨 배짱 누가 키웠나

  • 입력 2001년 9월 20일 18시 22분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가 깨지면서 국회가 ‘여대야소(與大野小)’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뀐 뒤 실시된 국정감사에서 온갖 비리의혹사건들이 드러나고 있어서 새삼 ‘여소야대’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비호 세력 믿고 法 비웃어▼

사실 지난해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부 여당을 견제하라고 야당인 한나라당을 국회 제1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른 바 ‘DJP 야합’으로 여권이 일시적으로나마 국회를 장악했다. 이제 대통령과 여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으니 국회의원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비리 폭로에만 그치지 말고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하겠다.

그동안 지앤지(G&G) 회장 이용호씨의 불법로비 의혹사건, 국가정보원 간부의 거액 수수, 안정남 건설교통부장관 동생의 입찰 특혜설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와 행정부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씨 사건만 보더라도 상당기간 내사와 자료 수집 끝에 검찰이 긴급체포한 피의자가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의 전화 1통으로 하루만에 풀려났다. 그 변호사는 전화 1통의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또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은 이씨로부터 6666만원을 받았다. 이밖에도 금융감독원, 국세청, 국정원, 정치권 실력자 등을 상대로 종횡무진 로비를 벌인 이씨의 비리 네트워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에 ‘근거 없는 폭로’라고 우겼던 검찰이 아직도 이 사건을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고 우길 것인가.

이 사건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한탕주의’ ‘지역연고주의’ ‘냉소주의’가 국민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첫째, 이씨는 주가조작이나 공금횡령 등으로 수십 차례나 고소, 고발, 진정을 당했으나 반성하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비리를 계속 저질렀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황금만능주의가 낳은 한탕주의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둘째, 이러한 한탕주의는 지역 연고에 따라 비리를 덮어준 비호세력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특정 지역에 편중된 행정부의 인사정책이 이런 비리의 온상이 된 셈이다. 작년에 이씨가 긴급 체포된 시기에 검찰에 전화를 건 법무장관 출신의 변호사, 수사를 맡았던 검사장, 부장검사 등이 ‘한탕주의자’와 같은 지역 출신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우리 사회의 최대 병폐인 ‘아는 사람 봐주기’라는 비도덕적(amoral) 연고주의가 비리를 척결하지 못하는 최대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한탕주의자’들은 비리를 눈감아 주는 비호세력을 믿으며 법을 비웃고, 대부분의 국민은 이들을 비호한 검찰에 대해 코웃음을 치고 있다. 이제 법을 비웃던 ‘한탕주의자’들은 제재를 받겠지만 국민의 실망과 냉소는 어떻게 하나. 대검 감찰부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나섰지만 국민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이 직간접으로 관련된 비리 의혹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은 명예를 걸고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옷로비 의혹사건, 파업유도사건, 이번에 다시 문제가 된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는 국민의 냉소주의를 부추겼다.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반부패위원회를 만들고 부패방지법을 제정했으나 권력형 비리가 계속되고 있으니 국민의 냉소가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또 조세정의를 명분으로 언론사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을 단행한 현 정권이 이씨 관련 KEP전자에 대한 세무조사는 관대하게 처리한 것을 보고 많은 국민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엄정 수사로 국민 마음 달래길▼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김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먼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한 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찰이 과거 옷로비 의혹사건 때처럼 면피용 수사로 적당히 넘기려고 할 경우 오히려 검찰에 대한 신뢰는 신뢰대로 손상되고 대통령에게도 부담을 줄 것이다.

그리고 지역연고주의에 따른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자면 지역편중 인사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나아가 여당인 민주당과 정부는 야당과 협력해 이번 사건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한탕주의 연고주의 냉소주의를 해결하는 장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용호(한림대 교수·정치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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