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度넘은 정부-방송 밀월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1분


진념(陳稔) 경제부총리는 요즘 금요일마다 KBS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다. 지난달 3일부터 지금까지 7차례 나갔고 다음달 5일까지 세 번 더 출연할 예정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도 경제부총리가 방송의 특정 프로그램에 두 달 동안 10차례나 계속 나가 정책 홍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진 부총리가 세운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진 부총리 외에도 최근 경제부처 장·차관이나 실국장 등의 TV와 라디오 출연 건수가 부쩍 늘어났다. 장차관들이 방송이나 신문에 얼마나 자주 등장해 정부 논리를 홍보하는지를 정부 모처(某處)에서 한 달 단위로 집계해 평가한다는 쑥덕거림도 들린다.

정부의 ‘경제교육·홍보 강화방안’(본보 17일자 A2면 보도)은 관료들의 방송 출연 급증에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짐작케 한다. 이 지침은 “토론 방향에 대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부처간 공동 대응이 필요한 사안은 경제장관 합동 TV 토론회를 열 필요가 있으며 주관 방송사는 방송3사와 협의해 선정하고 청와대 공보팀과 총리실 국정홍보처가 협조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기업과 개인 등 경제 주체의 심리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를 무기로 여전히 시장 위에 군림하는 현실에서 방송을 통한 ‘심리전’에 초점을 맞추는 정부나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방송의 ‘공생 관계’를 확인하니 씁쓸하다. 또 이런 식의 유착이 경제 분야 이외에 한동안 TV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한 이른바 ‘언론개혁’ 등 다른 분야에는 과연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주요 방송사들은 공영(公營)을 강조하고 있다. 관영(官營)이나 권영(權營)이 아니고 방송 전파는 국민의 것이므로 정부가 과점(寡占)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정부와 방송의 ‘밀월 현주소’는 아무리 봐도 도를 넘어선 것 같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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