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뉴스]ML슈퍼스타 배리 본즈

  • 입력 2001년 9월 7일 13시 17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라커룸. 자이언츠의 슬러거 배리 반즈는 TV 화면을 통해 새미 소사의 홈런을 장면을 보고 있었다. 반즈는 곧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투수들은 나한테만 고의사구를 많이 하는 거야!"

6일(미국시간) 경기에서 시즌 60번째 홈런을 때려낸 반즈의 기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9월5일까지 무려 145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공격의 기회를 적게 부여 받은 그가 때려낸 홈런 60개는 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개에 못지 않은 대기록이다. 리그에서 볼넷 2위는 소사인데 그는 단(?) 99개만을 기록 중이다.

맥과이어가 98년 70개의 홈런을 때렸을 때 그는 9월 한달 동안 정면 승부의 혜택(?)을 받았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찌감치 실패한 상황이었고 또 상대팀들도 플레이오프와 관련이 없는 팀들이 많았다. 따라서 상대 투수들은 맥과이어에게 볼넷을 줄 경우 심지어 홈팬들로 부터 야유를 받았기 때문에 '비겁자'라를 소리를 듣기 싫어 정면 승부를 했던 것이다.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이언츠의 중심 타자로서 또 상대팀이 플레이오프와 관련된 팀인 경우가 많은데도 꾸준히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반즈의 모습을 보면 당대 최고의 타자라는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린시절부터 만능 스포츠맨

반즈는 고교시절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이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와 미식축구에서도 출중한 기량을 갖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고교 졸업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지명을 거절하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8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1차로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92년까지 현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바비 보니야와 함께 '킬러B'로 불리우며 당시 피츠버그를 강팀으로 이끌었다.

반즈는 1990년에 처음으로 30-30클럽에 등록을 했고 그 해 시즌 MVP에 올랐다. 그리고, 92년 한번 더 MVP를 수상한 후 그의 아버지 바비 본즈가 활약했었던 자이언츠로 이적하게 됐다. 이적 첫 해인 93년 시즌, 그는 다시 시즌 MVP를 수상하면서 자이언츠의 간판선수로 자리 잡았고 지난해까지 골든글러브 8차례 수상, 통산 다섯번의 30-30클럽 달성을 이뤘다.

96년 시즌에는 40홈런 40도루를 기록함으로써 88년 오클랜드 소속이었던 호세 칸세코(현 시카고 와이트삭스)가 42홈런-40도루를 기록한 이후 '성역'으로 여겨지던 40-40클럽에 8년만에 그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후 98년에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42홈런,46도루를 기록하며 40-40클럽을 이룩한 3번째 선수가 된다.

96년 300-300 클럽에 가입한 후 98년 데뷔 13년만에 플로리다를 상대로 400-400 클럽에 들어간 반즈는 조만간 500홈런-500도루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500-500 클럽 가입 눈앞

호타 준족의 대명사인 20-20클럽에 가입만 해도 굉장한 선수라 하는걸 보면 30홈런 30도루를 자주 기록하는 반즈는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다.

올시즌 1천3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그는 시즌 후 FA가 된다. 정을 따라 친정에 남느냐, 돈을 쫓아 팀을 떠나느냐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1997년의 일이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당시 시카고 와이트삭스의 수퍼스타 앨버트 벨은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평균 연봉 1천1백만달러의 당시론 메가톤급 계약을 맺었다. 벨의 계약 소식을 전해들었던 반즈는 메이저리그 전체를 흔들어 놓는 일대 사건을 터뜨렸다. 자존심이 상한 반즈는 자신의 연봉을 벨보다 올려주던지, 그렇지 않으면 트레이드를 시켜달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반즈는 구단으로부터 93년 시즌부터 98년시즌까지 6년간 4천3백75만달러에 계약을 이미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구단은 2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없이 반즈의 손을 들어 주고 말았다. 2년 연장 계약을 맺은 자이언츠는 반즈에게 벨보다 많은 1천1백45만달러의 연봉을 지급한 것.

구단이 이렇듯 한 명의 선수에게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는 행동을 한 것은 다른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그 선수가 바로 '배리 반즈'였기 때문이다.

97년 당시 반즈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몸값을 제시한 것이며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구단에서 들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반즈는 주위에 기대대로 아니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해 왔으며 자신에게 실망이라는 표현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의 시즌 후 행보는 '돈'이 중심이 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 '배리 반즈 구장'으로 불리우는 퍼시픽 벨 팍을 지어준 구단과 반즈의 영원한 우상이자 자이언츠의 대부 윌리 메이스의 영향력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의 약점(0.191)과 때때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낭비로 매스컴의 표적이 되곤 하는 반즈는 최근엔 팀 동료들과의 불화, 언론 기자들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놀라운 성적은 당장 야구를 그만둔다고 해도 '명예의 전당' 헌액 100% 보장을 받을 것이다.

품성이 어떻든간에 반즈는 '위대한 선수'임에 틀림 없다.

저 작 권 자: ICC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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