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정은표 "저사람 탈북자 탤런트 아니야?"

  • 입력 2001년 9월 5일 19시 10분


“제가 결혼식은 처음 해보거든요. 너무 좋아서 다른 생각이 안 나네요.”

4일 오후 1시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전통혼례를 올린 배우 정은표(36)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KBS 1TV 일일극 ‘우리가 남인가요’(월∼금 저녁 8·25)에서 탈북자 필재로 출연 중인 그가 남한 처녀 미연(김채연)과 극중 결혼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랑에 굶주린’ 노총각이기 때문일까? 김채연과 키스신을 촬영할 때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입술 대신 코에 입맞춤을 하느라 NG를 연발하기도 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고 그는 말했다.

어수룩해보이지만 정은표는 탈북자 연기를 위해 각별한 정성을 들이고 있다. 3개월 째 일주일에 한 번씩 1년 전 탈북한 박상학씨(통일정보 신문사 기자)를 만나 북한말 개인교습을 받고, 북한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익히는 중이다.

“처음 연출자의 전화를 받고 새로운 시도이겠다 싶어 출연을 결정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탈북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절감했어요. 북한 사람들에게서 사투리를 배우면서 이질감이 사라지고 전라도 사람이 서울말을 접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는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는다거나 정착금을 사기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탈북자를 그릇되게 묘사했다는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마주친 실향민에게서 “필재 때문에 매일 TV를 본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도 느낀다.

전남 곡성 출신인 정은표는 옥과고교 1학년 때 지도교사가 너무 예뻐 얼떨결에 들어간 연극반에 가입하며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1985년 서울예전 연극과에 입학한 그는 90년 1월 극단 목화에 들어가 ‘연봉 100만 원 짜리’ 연극인이 됐다.

배고픈 나날이었지만 칠순 노인을 연기한 ‘백마강 달밤에’로 95년 백상 예술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영화 ‘유령’ ‘행복한 장의사’ ‘킬리만자로’ 등에 출연하며 비중 있는 조연으로 자리잡았다.

1m64의 작은 키와 시골 냄새나는 얼굴. 그러나 정은표는 “오히려 이 모습이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제 외모는 콤플렉스면서 장점이기도 해요. 어설프게 잘 생긴 것보다 확실하게 못 생긴 게 더 개성 있는 것 아닌가요?”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