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방송과 햇볕정책의 만남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7분


3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는 38회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리고 있었다. 연례 행사이지만 올해는 몇 가지 다른 의미가 보태졌다. 한류(韓流)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방송이고 위성방송도 12월을 목표로 본격 작업에 들어갔으며 이른바 ‘언론개혁’드라이브의 한 축에 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 시작 20여분 후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이만섭 국회의장 등이 입장하자 한국방송협회장인 박권상 KBS 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방송은 소프트 파워의 중심”이라며 한류 열풍에서 방송이 해낸 역할과 앞으로 위성방송이 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언급했다.

이어 이 의장이 건배 제의를 했다. 그는 “화합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 ‘중심’을 지켜주기 바란다”며 방송의 정치적 역할을 주문했다.

애매했던 ‘중심’의 의미는 김 대통령의 축사에서 비교적 또렷해졌다. 김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는 방송 독립을 공약으로 삼고 방송법을 개정해 이를 법적으로 보장했다”고 말한 뒤 10여분간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유엔도 지지하고 아셈도 지지하는 게 햇볕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방송의 힘이 절대적이고 이러한 햇볕정책을 위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방송이 청사(靑史)에 빛나는 공헌을 해달라”는 당부가 뒤따랐다.

이날 축하연이 열리기 몇 시간 전에는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려온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한 방송 관계자는 “평소 문화콘텐츠에 관심이 많던 대통령이 정작 ‘방송의 날’에 이를 언급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촌평했고 다른 관계자는 “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밤 KBS1 TV는 심야뉴스인 ‘뉴스라인’의 톱뉴스로, SBS TV는 별도 편성으로 각각 김 대통령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방송했다.

이승헌<문화부>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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