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저스트 원'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59분


‘저스트 원(Just One)! 네가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카드, 최선을 다하라는 것뿐.’ 자막이 뜨고 대사가 이어진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카드회사가 한국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을 등장시킨 광고다. 그런데 이 광고가 머잖아 TV 화면에서 사라질 모양이다. 10억원(추정액)이란 거액의 모델료를 들인 카드회사로서는 본전 생각이 날 노릇이지만 광고 효과는커녕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데야 울며 겨자를 먹을 수밖에.

▷유행어가 될 정도로 히트작이라던 광고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국민적 염원’을 안고 올 1월 출범한 히딩크 감독의 한국축구대표팀이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 대 5의 참패를 당하면서 기대가 실망에서 분노로까지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월드컵에서 한국은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 0 대 5로 패했는데, 이제는 그 ‘치욕적인 숫자’가 히딩크 감독을 따라다니고 있으니 액땜이라도 해야 할지….

▷물론 히딩크 감독의 말대로 아직은 준비 과정이니 세계적 강팀에게 크게 졌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당장의 참패가 보약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광고의 대사처럼 히딩크 감독이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두 달이 넘는 여름휴가를 보내고도 틈만 나면 외유를 즐기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월드컵까지 열 달도 채 안 남았는데 ‘이거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나오게도 됐다.

▷더구나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은 요즘 잘 나가고 있다. 이러다가 일본은 16강, 8강까지 오르고 한국은 예선 탈락하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의 프랑스 출신 필리페 트루시에 감독은 쉬지 않고 노력해 일본축구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가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 연봉 12억원(추정액)을 주고 모셔온 ‘족집게 과외선생’이다. 그에게는 성적으로 ‘저스트 원’의 선택을 입증할 의무가 있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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