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8·15의 도쿄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26분


종전기념일(패전일)인 15일 일본 도쿄(東京) 구단시타(九段下)에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둘러봤다. 올해로 세 번째다. 이곳에 오면 언제나 타임머신을 타고 60여년 전 전쟁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도쿄라는 현대적인 대도시에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놓은 듯한 곳이 바로 야스쿠니신사다.

신사 밖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일본의 최대 명절이자 휴가철인 ‘오본(お盆)’ 때여서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하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빚어지는 변화를 일본인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일본 사회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과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의견이 완전히 양분돼 있다.

총리의 참배문제를 둘러싸고 “단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곧바로 “한국이나 중국의 외압에 굴복하지 말라”는 주장이 맞부딛쳤다. “8월15일을 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왜 8월15일에 안 갔느냐, 실망했다”는 반박이 잇따른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정부특사설이 나오자 “잘 됐으면…” 하는 기대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웬 특사냐”는 불만이 엇갈린다. 교과서 문제도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반년 이상이 흘러갔다.

이런 논쟁은 정치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사회와 언론, 일반 국민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이 이번 논쟁의 특징이다.

일본 사회가 여기까지 온 것은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쪽은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 쪽은 내 갈 길을 가면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13일 참배를 강행한 뒤 “누구라도 거리낌 없이 참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일본에도 그의 언행에 반대하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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