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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13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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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당대 사회상을 각인한 중후한 중 장편소설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줄곧 대립해 왔다. 최근까지도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논전을 펼쳤다.
눈을 크게 뜰 건 없다. ‘이 나라’란 독일을 뜻한다. ‘진보’를 대표하는 거장이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 반대의 지점에 선 사람이 마틴 발저다. 조야한 이분법으로 얘기를 열었으니 노벨상 얘기까지 해보자. 많은 독일인들이 “다음번 독일에 주어질 노벨문학상은 발저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유년시절의 정체성(1991)’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발저의 장편소설이자 단행본.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응시하는 발저의 입장을 대할 수 있다.
주인공은 2차대전 중 청소년기를 겪은 동독 드레스덴 출신의 알프레드 도른. 전후 초기에 서베를린으로 이주한다. 발저의 소설에 나오는 다른 주인공들처럼 그는 소심증으로 시달리며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다. 특히 과거의 기억을 복구하는 데서만 그는 남다른 만족을 얻는다.
그런데 ‘분단’의 고착화가 과거 복구의 노력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고향인 드레스덴에 가는 일도, 잃어버린 추억의 물건들을 모으는 일도 무엇하나 쉽지 않다. 과거에 의해 심리적으로 보호받아온 도른은 분단이라는 역사의 장난에 의해 ‘과거’로부터 박탈된 존재가 된다. 동독관청의 부당한 행정집행, 비인간적 국경검색 등 불쾌한 분단의 부속물들이 소설 사이사이를 수놓는다. 그는 결국 자살에 가까운 약물과용으로 목숨을 잃는다.
우리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구서독의 ‘진보’진영은 대체로 통일을 반대해왔다. 서독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인 ‘독일민주공화국(DDR)’의 정체성을 인정하고자 한 데다, 분단 상황의 인정 속에 파시즘의 반성이라는 의미까지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의 대표자인 발저는 분단이라는 모순상황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독(毒)에 주목하고, 통일 독일에의 전망을 조심스럽게 긍정했다.
역사는 발저 진영의 바람대로 흘러갔지만, 그라스와 발저는 요즘도 논전을 그치지 않는다. 동독의 ‘완전한 청산’과 서독화에 의문을 던지는 그라스의 목소리, 동질적인 독일을 강조하는 발저의 목소리는 아직도 통일된 음조(音調)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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