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최인호 단편집 '달콤한 인생' 출간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5분


◆달콤한 인생 /최인호 단편집/ 328쪽 8000원 문학동네

그가 돌아온다. 깊고 푸른 밤을 지나, 길 없는 길을 걷고 걸어, 지금은 무지개를 뛰어넘기 위해 먼 거리의 지평선을 내달리는 그가 보인다. 그는 달콤한 인생을 거머쥐고 꿈결인 듯 달려오고 있다.

늘 이곳에 있었는데도 돌아온다고 생각되어 부지런히 그를 맞는 것은 ‘달콤한 인생’이 ‘위대한 유산’ 이후 이십 년만에 나온 소설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본 것은 열서너 살 즈음 ‘지구인’이었다. 추리소설과 하이틴로맨스류에 빠져 있던 때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 책을 뽑아들었는지. 지구인(地球人)을 지옥인(地玉人)이라 제 맘대로 독음하면서 밤을 세워 읽었다. 로맨스보다 더 재밌는 책이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나 이 책 ‘달콤한 인생’으로 그의 소설을 다시 만났다. 먼길을 돌아 이윽고 도착한 그는 다채로운 생의 시간들을 지나온 늙은 어부가 되어 바닷속 비밀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악몽에 가까운 이야기를 그는 나직나직 이야기한다. 나는 여전히 열 몇 살의 아이로 그의 무릎에 걸터앉아 세월의 깊이가 묻은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살갗에 와 닿는 짙은 물기를 느낀다. 그것은 수장용 배에 실려 바다로 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흘리는 아랑의 눈물이며, 노래를 부르며 목욕을 하던 누이의 몸에 튀는 물방울이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코끝을 맴도는 은근한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망치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쇳내가, 이제 막 세상을 나온 새끼 제비의 털냄새가 맡아진다. 장례식이어도 관을 장식한 화려한 야생화와 꽃들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 향기에는 인생에 대한 어떤 애틋함과 연륜이 묻어 나온다.

나는 아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설핏 꿈까지 꾼다. 하늘만큼 뛰어올라 허공으로 사라지거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1번 국도 어느 즈음에 가있기도 한다. 그리고 낮잠의 짧은 꿈속에서 만났던 몽유(夢遊)의 여인을 현실세계 속에서 찾으려 했던 대왕 여경이 되어본다.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꿈속에서 본 도원경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 헤매는 몽유병의 꿈놀이’이며 이 세계는 ‘실은 우리가 살고 있던 저 먼 곳에서부터 높이뛰기해서 잠시 머물다 가는 허공’인 것을. 그는 잠시 머물다가는 허공을 날아날아 어느 곳에 닿을까.

그는 ‘문학의 향기가 저절로 옷깃에 스며 너울너울 사람을 따라오는 나비, 그런 호접(胡蝶)과 같은 단편소설들을 쓰고 싶다’고 했다. 호접과 같은 소설이라니…. 나는 봄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를 감지한 나비가 된 듯 벌써부터 촉수가 간질간질하다.천 운 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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