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아주대병원 응급실 김재우씨

  • 입력 2001년 6월 28일 19시 54분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든 발걸음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곳이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이다. 의사들 사이에서조차 응급실 근무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힐 정도다.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4년차 김재우(金載佑·38)씨는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나서도 그런 응급실 근무를 자청한 ‘특이한’ 의사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사명감’ 때문에 응급실 근무를 자원했으리라는 기자의 예단을 경계했다. “인턴과정을 마친 뒤 전공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 병원 응급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만났던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짧은 시간에 만나면서 ‘아, 세상이 이런거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자칫 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도 살릴 수 있었고…그게 좋았을 뿐이예요.”》

적게는 여덟살, 많게는 열세살이나 차이나는 후배들과 함께 받는 훈련이 쉬울 리 없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게다가 개업하면 당장이라도 적지않은 돈을 벌수 있는 외과의사 아닌가. 그런데도 김씨는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가볍게, 그러나 경박하지 않은 태도로 말했다. 마취과 의사인 아내의 도움도 컸다.

“외과병동이 정교한 실사(實寫)영화를 보는 듯 하다면 응급실은 빨리 돌아가는 필름을 보는 것같은 느낌이예요. 위급한 상황에서 그 순간만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고맙지요.”

▼응급실 의사는 요단강 강지기▼

삐뽀 삐뽀 삐뽀….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소리가 들리면 짜릿한 긴장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이번엔 어떤 일일까. 환자에겐 죄송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기분 나쁘지 않다. 저만치서 바퀴달린 침대가 굴러오는 것만 봐도 위급한지 아닌지 감이 딱 온다. 그리고 그 느낌은 대개 맞는다.

지난 겨울엔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산장에서 잠자다 실려온 남자가 있었다. 체온 22도. ‘냉동 인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살려야되나 말아야되나 생각했다.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은 상태로 4분이 지나면 뇌가 썩기 시작한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응급의는 고독하다. 판사도, 신도 아니면서 사람의 목숨을 판단해야 하므로.

일단 해보자고 작정했다. TV의학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심폐소생술로 심장에 충격을 주기 시작한지 5분. 아직 심전도 수치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에겐 ‘뛰었다’는 느낌이 왔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내색은 하지않았다. 혹시라도 가족들을 두번 실망시킬까봐.

“시체처럼 실려왔던 사람이 제발로 걸어나가면서 겸연쩍은 듯 웃더라구요. 그럴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생사를 가르는 강을 요단강이라고 하잖아요. 다시 오지 못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을 건져내서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일, 요단강 강지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김씨로서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오히려 침착하게 일을 처리해가는 자기자신을 만나면서 도를 닦는다고 여긴다. 돈은 환자가 지불하지만 그로서는 환자들로부터 얻는 것이 더 많다. 대단한 사명감을 지닌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로 비쳐지기를 원치않는 이유도 이 때문인듯 했다.

▼응급실엔 드라마가 있다▼

응급의학 교과서에 나오듯, 응급실의 특징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질환으로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이다. 심근경색 뇌혈관계질환 치명적 사고 등 긴급하게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진정한 의미의 응급환자지만 그런 환자는 열명 중 두세명 정도. 환자나 보호자가 ‘느끼기에’ 즉시 의료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다양한 환자들의 갖가지 사연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응급실이다. 그래서 응급실엔 TV보다 생생한 드라마가 있다. 하루는 배가 아프다는 야리야리한 여고생을 엄마 아빠가 데리고 왔다. 가임기 여성이 오면 나이와 상관없이 임신여부부터 검사하는 게 순서다. 소변검사를 위해 화장실에 보냈더니 물컹 하고 뭔가 쏟아졌다고 했다. 분만이 벌써 시작된 것이다. 엄마 아빠의 놀란 표정을 말로 옮기긴 힘들다.

집안 어른이 갑자기 쓰러져 온식구가 몰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황급히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데 근심어린 표정으로 묻는 가족들이 있다. “그거 돈 많이 드는 거 아닌가요?”

“노인을 살려주었으면 좋기는 하겠는데 돈은 많이 안들였으면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죠. 처음엔 기가 막혔지만 그런 것도 사람사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계상황에 부닥쳤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맨얼굴은 다양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모습이기도 해요.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에서.”

혹시 성선설을 믿지 않게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선악(善惡)이 개오사(皆吾師)라. 좋지않은 사람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 뿐.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

서울 출생인 그는 순천향의대 82학번이다. 고교시절 생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누군가 사람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잘만들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의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도 인체의 신비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사람 몸이라는 것은 과하면 넘치고, 욕심부리면 병이 생기도록 만들어졌어요. 예를 들자면, 먹은 것을 보관해놓는 기능을 간이 하는데 먹기는 많이 먹고 덜 쓰면 지방간이 돼요. 그래도 잘못을 못고치면 간경변이 돼버리죠. 한번은 보름동안 밥은 안먹고 술만 마시고 행패부리던 사람이 쓰러져 왔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사람은 병이 생겨야만 했어요. 병이 되레 사람을 살릴 수도 있거든요.”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의사가 “그러니까 병에 걸렸지요!” 한다면 분통이 터질 게다. 엊그제 치통때문에 치과에 갔었다는 그는 “나는 아파 죽겠는데 태연한 표정으로 오가는 의사를 보니 짜증이 나더라”고 했다.

지난해 김씨는 아끼던 아랫동서를 잃었다. 길에서 ‘행려’개를 만나면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일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동서가 고향에 가기 전날 만나서 다리 상처를 치료해주고 잘갔다오라고 인사까지 했는데, 그만 물에 빠진 조카를 구해낸 뒤 세상을 떠났다. 응급실에서 늘 죽음 가까이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아침에 말짱하게 인사하고 나온 사람이 갑자기 변고를 당하는 게 부지기수예요. 매 순간순간 살아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살아있는 동안 이번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죽음 옆에서 깨닫는다. 매일 보는 가족이라고, 매일 대하는 일이라고 설렁설렁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늘 지나간 뒤 후회하는 것이 사람인 법. 김씨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70넘은 부모님과 싸우며 산다”며 웃었다.

▼믿는 만큼 낫는다▼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만난다. 의사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가 이쁘게 보는 사람은 의사를 믿는 환자와 보호자다. 치료를 할 때 “그러면 좀 나을까요?”라고 묻는 보호자에게는 “낫습니다. 믿는 만큼 치료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세요”하고 말해준다. 의사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의사를 믿어주면 그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는 경험을 적잖게 했다.

최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환자들 중 절반이상이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도가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책임있는 말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면서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현장에 있으면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기보다 제때 응급실에 오지 못한 환자들을 더 많이 봅니다. 119에 전화를 했는데 안와서 택시타고 왔다든가 하는 불평이지요.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응급실에 왔는데도 왜 빨리 치료해 주지 않느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 김씨는 “환자가 오는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순서대로 보기 때문”이라며 내 가족이 다쳐 응급실에 왔더라도 더 급한 환자부터 볼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인터뷰 중에 그는 “내가 신문에 날만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제대 말년’에다 숙련된 외과의사의 손을 지닌 덕에 봄부터 그는 생리학 실험실에 파견돼있는 중이다. 응급실 근무는 일주일에 두번.

레지던트를 마친 뒤 응급실 전문의로 남을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부터 지었다. “평생 사명감을 갖고 응급실을 지키겠다고 대답해야 좋을텐데…. 잘 모르겠어요. 인체를 공부하는 게 좋아 의사가 됐고, 짧은 시간에 인생을 더 배우고 싶어서 응급실을 했고, 즐거웠고…개업을 할 생각도 있어요. 인터뷰 취지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그는 솔직했다. ‘착하고 똑똑하게 살자’가 좌우명이라고 했다. 착하고 미련한 것도 싫고, 똑똑한데 얌체같은 것도 싫다. 다만 내 앞의 환자를 단순히 병을 지닌 객체가 아닌, 수많은 드라마와, 삶의 굴곡과, 아름다움과 추함까지도 지닌 한 사람으로 대하는 의사이고 싶다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