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3년]작년 한빛銀 떠난 전연규씨 "28년 청춘바친 직장서 명퇴"

  • 입력 2001년 6월 28일 18시 29분


“남자들은 제대 후 군대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후 한동안 은행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6일 900명의 동료들이 명퇴할 때 한빛은행을 떠난 전연규씨(48). 이직 한번 생각지 않고 28년을 충성한 직장이 어느날 ‘당신은 이번 명퇴 대상’이라고 알려오자 허무감 밖에 들지 않았다. 요즘은 누구나 80세까지 산다는 데 그 때까지 뭘하며 살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

하지만 우연히 참여하게 된 ‘퇴직 컨설팅’ 프로그램은 새 생활을 찾게 했다. 여기서 만난 동료들과 금융컨설팅업체인 ‘한국알앤씨파트너’도 꾸렸다. 당장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난달엔 경영지도사 1차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명퇴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가난했지만 명문 상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고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 해외연수도 다녀올 만큼 노력을 다했다.

은행에선 인사부 국제영업부 감찰반 등 이른바 요직도 거쳤다. 입사후 10여년은 일년 중 100일을 넘게 야근하고 10∼20일은 밤샘 야근도 할 만큼 일했다. 누구에게든 ‘일 잘한다’는 평가만은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부하직원의 금융사고로 받은 단 한번의 감독책임 징계는 자신을 명퇴로 내몰았다.

“사고를 내지 않아야 잘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행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위축돼 있습니다. 은행원들이 몸을 사리면 그만큼 서민들이 고생이죠. 행원들이 직업정신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합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