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침범' 알고도 골프친 군수뇌부

  • 입력 2001년 6월 21일 18시 46분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있을 때 우리 군 수뇌부는 한가롭게 골프장에 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영길(曺永吉) 합참의장은 6월2일 오전 11시43분 청진2호의 공해상 포착 사실을 보고받고도 예정대로 경기 성남시 남성대골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1시30분경 골프를 시작한 뒤 또 다른 북한 선박인 영군봉호의 영해 침범 사실을 보고받고도 계속 골프를 쳤다. 군의 작전을 총지휘하는 합참의장이라면 보고를 받는 즉시 당연히 지휘선상으로 복귀했어야 했다.

더욱이 조 의장은 오후 7시20분경 골프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이날의 세 번째 북한 선박인 백마강호의 제주해협 영해 침범을 보고받은 뒤에도 합참 상황실로 가지 않고 공관으로 귀가했다.

군 관계자들은 조 의장이 낮에도 필요한 지시를 내려보냈고 오후 7시20분에는 위기조치반 소집을 지시했으니 군의 대응태세에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군 수뇌부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도 이날 낮 북한선박의 영행침범 사실을 보고 받고도 남성대 골프장으로 가 오후 4시 30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국방차관은 군령(軍令) 선상에 있지 않지만 권영효(權永孝) 국방차관도 이날 낮 12시경부터 같은 장소에서 골프를 쳤다. 권 차관은 이날 사태를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북한 선박의 영해 침범 보고를 받고도 골프를 계속 쳤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군의 정신자세가 해이해져 있음을 말해준다. NSC 회의가 열리고 있던 시각에 발견된 북한 배의 영해침범 사실이 NSC 회의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으니 위기관리체계에도 큰 구멍이 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5일 북측의 연이은 도발에 우리 군이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칭찬했다.

일본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2월 일본 고교실습선이 미 핵잠수함과 충돌한 사고 소식을 듣고도 골프를 쳤다가 결국 총리직을 물러났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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