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거짓말 하지마!‥김종률 검사 용의자 행동분석

  • 입력 2001년 6월 20일 18시 51분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여주인공 샤론 스톤은 형사들의 신문 도중 ‘다리를 꼬는’ 뇌쇄적인 행동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다리를 꼰 동작이 그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증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김종률 춘천지방검찰청 검사는 최근 한국심리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형사피의자에 대한 행동 분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쉽게 말해 용의자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거짓말을 과학적으로 찾아내는 ‘인간 거짓말탐지기’를 만드는 것이다.

김 검사에 따르면 범인들이 거짓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처를 죽인 범인은 ‘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가’라는 평범한 질문에도 살인 장면을 떠올리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변화를 보이게 된다. 수사관은 이처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질문을 던지며 범인의 반응을 통해 진실을 찾아나간다.

거짓말쟁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행동은 ‘입가리기’다. 거짓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코와 입을 손으로 가리거나 덮는 것이다. 거짓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눈꺼풀을 긁는 것도 대표적인 ‘거짓말 행동’. 거짓말을 하면서 수사관을 보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범인은 거짓말을 하면서 다양한 몸다듬기 행동을 한다. 거짓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실 보푸라기 뜯기나 먼지 털기, 보석 손질하기, 손톱 검사하기 등이 대표적인 몸다듬기 행동이다.

샤론 스톤의 다리꼬기도 ‘거짓말 행동’의 하나다. 다리를 꼬았다고 해서 거짓말은 아니지만,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는 것은 이른바 방어적 자세로 불안감을 노출하는 행동이다.

말을 할 때 억양이나 속도 등도 거짓말을 가리는데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해 평균 0.5초 정도 기다렸다가 답을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평균 1.5초 정도 걸린다.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다. 형사들의 추궁이 이어지면 거짓말을 하는 범인은 목소리가 줄어들고, 입에서 우물거리곤 한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의 추궁에 ‘안 했어요’라고 대답하지만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는 것과 같다.

거짓말 행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자백을 하기 전에 꼭 보여주는 행동도 있다. 턱을 손으로 문지른 뒤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쉰다는 것. 이른바 ‘자백행동’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도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며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해서 꼭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문도중 여러 행동과 말의 내용, 억양, 속도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히 범인이 교묘한 지능범이고 연기에 능할 수록 비디오로 녹화해 정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95년 말 청송감호소에 갇힌 상습 범죄자들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고민하다 이같은 범죄심리학을 연구하게 됐다는 김 검사는 “미국 등 수사 선진국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수사관들에게 이런 심문기법 교육을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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