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무엇이 美수사 움직이나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39분


대한항공(KAL)기 괌추락 사고의 피해자 손선녀씨(27·여)가 의문사한 사건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한 편의 영화 같다”고 말했다. 생모와의 이별에서부터 항공기 사고와 거액의 배상금, 그리고 미국에서의 비참한 죽음 등 모든 것이 너무나 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현지 상황은 영화를 떠올릴 만큼 한가롭지 않다. ‘의문사’와 ‘진상규명’ 등 가슴 답답한 말들이 현장 주변을 맴돈다.

미국 경찰은 “(타살이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증거가 있는 사건이 어디 있는가. 미국 경찰은 사망원인에 대한 ‘확인’보다 ‘판단’을 먼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 현지시간으로 18일 오전 한국 변호사와 한인회 간부 등이 현지 검찰 책임자와 경찰서장을 만난 자리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손선녀씨는 아직 한국사람입니다. 우리가 멀리 한국에서 와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을 듣던 한 교포가 조용히 말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안되는 겁니다. 죽은 손씨가 미국인이,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미국 경찰과 검찰의 태도는 한국 변호사 일행을 면담한 뒤 변화를 보였다. 검찰 책임자가 재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사망원인에 대해 ‘자연사’만 되뇌던 경찰도 ‘지금으로서는(for now)’이라는 전제를 달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부른 것은 ‘관심’이다. 변호사들이 꼼꼼한 현장조사를 토대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한국내 여론 동향을 설명하고 한인회 간부들이 직접 방문해 성의없는 수사 태도에 항의표시를 하는 등 이 사건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보인 결과다.

손씨의 미국 현지 변호사인 도나 스미스(여)는 “관심을 가져야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내 한인들의 인권상황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실감했다.

<녹스빌(미국테네시주)에서>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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