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건강]미국 학회 보고 차세대 암 치료법

  • 입력 2001년 5월 22일 18시 29분


“수많은 학자들의 서두르지 않고, 끊임없는 연구노력 앞에 암은 반드시 정복될 것입니다.”

12일 오전 제37회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회의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무스콘 센터 대회의장. 아인호른 ASCO회장의 확신에 찬 개막연설이 끝나자 수천여명의 참석자들이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70여개국 2만5000여명이 참석해 나흘간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그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암 정복에 성큼 다가선 희망적인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 등 ‘유전학 혁명’과 분자생물학 기술의 결합 등으로 암의 치료 및 예방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ASCO회의에서 소개된 최신 암 치료법의 실태와 전망을 짚어본다.

▽분자 표적치료법〓2차대전 당시 폭격기들의 ‘융단폭격’은 적군은 물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아군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걸프전 당시 사용된 정밀 유도탄은 아군에는 아무런 피해없이 적의 목표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기존의 항암치료법은 ‘무차별 폭격’에 비유된다. 기존의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은 탈모와 메스꺼움 등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반면 차세대 암 치료법으로 주목받는 ‘분자 표적치료법’(morecular targeted therapy)은 암세포의 특정 부분을 정확히 추적해 공격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으로 개발된 각종 항암제들은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0일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스위스 노바티스사의 만성 골수백혈병 치료제 글리벡(개발명 STI571)이 ‘대표주자’. 글리벡은 특별한 위암(GIST)에 대해서도 효능을 나타내 주목받고 있다. 또 지난해 미국 임클론시스템사가 개발한 결장암 치료제인 IMC-C225와 제네테크사가 개발해 98년 FDA 승인을 받은 유방암 치료제 헤르셉틴도 ‘차세대 항암제’로 각광받고 있다.

글리벡을 개발한 미국 오리건 암센터 혈액학연구실장 드러커 박사는 “보다 ‘선별적’이고 ‘정밀한’ 암 치료가 가능하게 됐다”며 “향후 기존 화학 치료와의 결합을 통해 치료 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연구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혈관생성 억제 치료법〓‘암세포로 향하는 보급로를 차단하라’. 또 다른 차세대 암 치료법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 혈관생성 억제 치료법(anti angiogenisis)의 원리다. 이 치료법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의 혈관 생성을 방해하는 것. 혈관 생성이 차단된 암세포는 혈액을 통한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겨 죽게 된다.

이번 ASCO회의에서 이 치료법의 성과는 현재까지 미미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존 화학치료와 병행, 암 세포 증식을 보다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일부 임상시험 결과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기타〓유전자 치료법도 상당한 성과가 있는 편. 미국 MD앤더슨 암 센터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기술로 개발된 가글액이 구강암의 전조 증상인 구강내 반점을 공격해 소멸시킨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1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시험한 결과 2명의 환자는 구강내 반점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또 미국 스탠퍼드대 로렌스 퐁 박사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유전 조작해 만든 직결장암 치료 백신이 임상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존 치료법의 ‘업 그레이드’ 분야도 눈에 띄었다. 수술 뒤에도 재발이 많아 사망률이 높은 방광암의 경우 항암제 치료를 병행한 결과 생존 수명이 2배 이상 높아졌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또 후두암, 식도암도 수술 전 화학요법을 통해 평균 1년 이상 생명이 연장됐다는 보고도 잇따랐다.

<샌프란시스코〓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미국 수젠 암연구소 사우버 소장

미국 샌프란시스코 외곽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40여분간 달려 도착한 수젠 암 연구소.

다국적 제약업체인 파마시아사가 운영하는 이 곳에서는 100여명의 연구진이 밤낮없이 암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대지 5000여평에 5층 규모의 이 연구소는 첨단 의학장비와 우수 인력을 대거 확보해 그동안 암 치료를 위한 각종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연구소의 모태는 91년 미국 뉴욕대 약대의 조셉 박사와 민간 연구소의 액슬 박사가 공동 설립한 바이오 벤처. 3년 뒤 파마시아사에 인수되면서 본격적인 암 연구소로 바뀌었다.

수젠 연구소의 연구기법은 분자 및 세포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다. 두 분야는 정상세포까지 파괴해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는 기존의 암 치료법 대신 암 세포만을 정확히 ‘쫓아’ 공격하는 ‘분자표적 치료법’의 근간.

최근 연구소 관계자들은 내년 상반기 시판을 목표로 개발 완료 단계에 와 있는 ‘혈관형성 억제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치료제는 암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함으로써 증식에 필요한 혈관 생성을 차단시켜 암세포를 ‘고사(枯死)’시키게 된다.

이 연구소의 한해 평균 연구개발비는 수천억원 선.

로라 샤우버 소장은 “새 치료법이 성공할 경우 다양한 암 치료가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세계적인 연구기관들도 앞다퉈 차세대 암 치료제 개발에 나서 조만간 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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