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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3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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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거나 경찰이 필요한 때, 위급한 상황이면 언제라도 전화하세요. 푸르덴셜이 즉시 도와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보험회사는 단지 경제 문제만 해결해주는 곳이 아니다.
미국 생명보험시장의 1, 2위를 차지하는 푸르덴셜과 메트라이프는 1년여 전부터 암보험 같은 질병보험이나 의료보험은 팔지 않는다. 그저 위험만 피하게 해주는 ‘고전적 형태’의 보험으로는 고객을 유인할 수 없기 때문. 게다가 이런 것들은 이익도 박하다. 대신 보험뿐만 아니라 증권과 은행 등의 상품을 갖춘 ‘금융 슈퍼마켓’에서 투자상담사(FP·Financial Planner)의 재정설계를 통해 ‘개인금융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메트라이프는 올들어 보험판매인을 ‘대리인’(에이전트)과 ‘재정설계 서비스인’(FSR)으로 나눠 부른다. 보험사를 대신해 보험계약을 하는 사람이 대리인(에이전트)이라면 FSR는 고객의 장기재정계획 설계에 대한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푸르덴셜은 전체 에이전트의 약 10%인 700명을 FP라고 부른다. 모든 설계사가 증권이나 보험관련 자격증을 3개 이상 갖추지만 이들은 더 많은 자격증과 교육을 받은 전문 금융인으로 재정설계에 대해 수백에서 수천 달러의 수수료도 받는다. 자산이 수백만 달러 이상인 고객의 재정설계를 할 때는 법률가나 회계사가 함께 참여한다. FP인 푸르덴셜의 벤저민 홍 부사장은 “고객의 재정설계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고객의 자산현황을 연평균 2∼4회 점검, 단계별 재정설계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해준다”고 말했다.
“취재기자를 대상으로 재정설계를 한번 해봐달라”고 요청하자 메트라이프의 FSR는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안 된다”며 거절했다. 그는 2㎝ 두께의 재정설계자료를 보여주며 “이것이 한 사람에 대한 설계내용”이라고 말했다.
일반 재정설계에선 개인의 현재 자산뿐만 아니라 자녀의 희망 교육정도, 은퇴시기와 은퇴후 생활수준 등 수십, 수백 개의 항목이 고려된다. 또 원하는 미래의 소득수준이 나오면 투자수익률을 고려한 투자수단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자녀교육을 위한 재정설계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교육시킬 것인지 △사립에 보낼 것인지, 공립에 보낼 것인지 △아르바이트를 시킬 것인지 등 갖가지 경우가 고려된다.
이들 보험사와 거래하는 고객은 다른 금융기관과 거래할 필요가 없다. 금융활동에 필요한 모든 분야를 다 갖췄기 때문. 한마디로 ‘인생을 설계해주는 것’이다.
푸르덴셜은 이 같은 종합금융서비스를 하기 위해 81년 증권사를 인수한 데 이어 90년에 들어선 은행업에 진출하고 부동산중개회사도 인수했다. 고객이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보험뿐만 아니라 은행(예금) 투자회사(연금 뮤추얼펀드)와도 거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푸르―온라인’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푸르덴셜과 관련된 모든 거래영역은 물론 매일매일의 투자수익률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일이 그냥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푸르덴셜의 변화는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 금리가 떨어지자 고금리에 맛들인 고객들이 주식시장과 뮤추얼펀드로 옮겨간 것. 3년 뒤 푸르덴셜은 업계 최초로 고객이 직접 △주식 채권 부동산 등 투자대상을 정하고 △대신 투자수익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변액보험(VL·Variable Life)을 시장에 내놨다. 약 5년 전엔 보험료도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변형 변액보험’(UVL·Uni―versal Variable Life)도 내놨다.
메트라이프의 아시아담당 피터 유 부사장은 “미국 보험시장에서 최근 2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변액보험이 도입된 것”이라며 “보험시장에 투자 실적이 유동적인 상품을 도입한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국내시장에서 지난해부터 급속히 확산되는 전통형 종신보험(WL·Whole Life)은 미국시장에선 매년 신계약건수가 7% 가량 감소하고 있다. 푸르덴셜사는 지난해 가을엔 ‘아이디얼 랩(ideal lab)’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설계사 상품개발자 연구자 등 보험사의 각 분야 임직원 30여명이 3개월에 한번씩 모여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시장을 따라가고 고객의 요구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조직. 상품의 만족도를 점검, 6개월∼1년마다 상품을 개선한다.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금융상품에 대한 고객의 기대도 달라집니다. 금융회사가 생존하려면 이 변화를 빨리 알아채야 합니다.”(푸르덴셜사 상품개발담당 메이 키니 부사장)
▼"종신보험 투자성 없다"…변액보험 인기
“일반 종신보험의 신계약은 해마다 7∼8%씩 줄고 있어요.”(메트라이프의 피터 유 부사장)
국내에선 선진금융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종신보험이 미국시장에선 이미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는 것에 취재팀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일반 종신보험은 보호 기능만 있을 뿐 투자성이 없잖아요.”(유 부사장)
불의의 사고에 대한 대비는 되지만 투자수익률 부문에선 뮤추얼펀드 등에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푸르덴셜은 80년대 초 이미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반영할 수 있는 ‘변액보험(variable)’을 도입해 투자성을 보완했다. 변액보험은 보험료 중 사업비를 제외한 대부분을 고객이 지정한 주식 국공채 등에 투자한 뒤 실적에 따라 투자수익을 계약자에게 주는 상품. 대신 고객들은 투자의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떠안게 되며 심지어 원금이 손실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인지 푸르덴셜측은 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푸르덴셜의 국제담당 로널드 샤피로는 “미국에서도 상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고객이 수익률이 나쁘다는 이유로 소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투자상담사(FP)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장된 수익률을 말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변액보험의 성공여부는 각국의 시장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샤피로는 “미국시장에선 과거 10여년 동안 주식시장이 꾸준히 성장해 성적이 좋았지만 일본에선 실패한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6월쯤 변액보험이 첫선을 보일 전망이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