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미성년자 낙태 불법시술 年10만~20만건 추정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25분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A산부인과. 15평 남짓한 공간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여느 산부인과와 다른 느낌이었다. 간호사 2명 중 1명은 연방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1명이 방문자를 안내했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고객’의 가족처럼 행세했다. “고교 1학년인 여동생이 복대를 차고 있는 것을 최근 알았습니다. 임신 5∼6개월은 되는 것 같은데….” 이에 간호사는 “때리거나 심하게 야단치면 빗나가니까 잘 타일러서 하루빨리 병원에 데려오셔요”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또 임신 4∼5개월 이하면 10∼15분 수술을 받으면 되고 5∼7개월이면 자신이 소개하는 다른 곳에서 아기를 지우면 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7개월 이상이면…?” “일단 아기를 미숙아 상태에서 낳아야 해요. 동생은 산고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 뒤엔 병원에서 알아서 처리해요.”

목소리를 낮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간호사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병원에서 미숙아를 그냥 놔둬요. 아기가 어떻게 되겠어요? 시신은 적출물 처리업체가 소각하죠.”

본보 취재진이 서울 청량리와 종로 등지의 ‘낙태전문 산부인과’ 10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한 결과 의원당 한 달에 30∼50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미성년자 낙태인 것으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20대 미혼 여성이며 기혼 여성의 낙태는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낙태 수술료는 현금만 통한다. 임신 3∼5개월은 40만∼80만원, 그 이상이면 최소 100만원. 특히 토요일 오후 2시 이후가 ‘대목’이며 이 때엔 교복을 입은 여학생도 온다.

B산부인과의 간호사는 “6, 7년 전부터 여중생은 물론 초등학생이 낙태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면서 “부모들은 충격을 받지만 실태를 알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C산부인과에서 이틀 전 낙태한 김모양(고3)은 교복을 입은 채 통원 치료 중이었다. 김양은 “80만원을 냈는데 학생이어서 비싸게 받는 것 같다”며 억울해 했다. 김양은 “어머니에게 ‘가난한 친구가 임신했는데 도와줘야 한다’고 졸라 돈을 타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낙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한 원조교제도 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원조교제를 한 미성년자 220명을 적발했는데 올해는 4월말 현재 적발된 미성년자가 190명을 넘어섰다. 서울경찰청 김강자(金康子)방범지도과장은 “이들 중 상당수가 낙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원조교제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미성년자 낙태가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는 베일에 가려 있다. 보건소에서 매월 조사하지만 병원들이 시술 사실을 숨기기 때문.

낙태 실태를 연구해 온 서울의 E의원 최모원장(48)은 “전국의 병의원 수를 감안하면 한해 낙태 건수는 정상 출산의 4, 5배인 100만여건으로 추정됐다”며 “이중 미성년자가 10∼2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미혼이라도 20대 이상의 낙태는 감소하는 대신 10대 낙태가 급증하고 있으며 임신 6∼7주인 초기나 7∼9개월인 말기에 낙태수술을 받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윤상호·이진한기자>ysh1005@donga.com

▼낙태 원인과 문제점▼

미성년자 낙태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문화와 생명 경시 풍조를 극명히 보여주지만 미성년자나 시술 의사만을 탓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서울경찰청 김강자(金康子)방범지도과장은 “원조교제로 적발된 아이들을 상담해 보면 성에 대해 접할 기회는 많지만 대부분 피임법이나 출산 지식 등은 거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미혼모나 사생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생명 존중을 강조하며 무조건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사회 전반에 깔린 생명 경시 풍조가 꼽힌다.

또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본인 또는 배우자의 유전적 정신 및 신체 질환 △본인 또는 배우자의 전염 질환 △성폭행 △근친상간 △임신부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등에 한해 임신 7개월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 김일수(金日秀)교수는 “불가피할 때엔 형법의 긴급피난 조항으로 낙태가 가능한데도 모자보건법의 모호한 규정이 낙태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조만간 국회에 이 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을 내고 헌법재판소에도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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