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건강보험, 지출감소만이 해결책인가?

  • 입력 2001년 5월 2일 10시 52분


재정적자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이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과 구 정권의 관료들을 중심으로 재정문제가 의보통합과 의약분업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아예 돈이 드는 현재의 공적인 의료보장체계 자체를 해체하여 현재의 '획일화되고 평준화된 의료체계' 대신 '의료사보험' 또는 의료저축제도를 도입하여 재정적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의약분업을 원점으로 돌리고 의보통합을 해체하며 공적의료보험대신 각자 알아서 하는 사적의료의 체계를 도입하면 재정문제는 해결된다. 건강보험을 없애버리면 건강보험재정문제는 당연히 해결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이지 '재정적자' 자체가 아니다.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국민건강에 있어서는 재앙을 초래할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사회의 건강보험재정지출은 올 한해에 14조 정도로 예상된다. 그런데 총의료비지출은 GDP의 5-6%수준으로 3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 총의료비지출에서 의료보험과 의료보호까지 포함해서 공적의료보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비의 50% 이상을 공적의료보장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직접 자신의 주머니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의료보험증이 중병에 걸렸을 때는 휴지조각이 되고 진료비할인쿠폰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자동차보험을 생각해보자. 큰 사고가 났을 때 본인이 60% 이상을 부담한다면 그것이 무슨 보험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우리사회의 건강보험은 그 보장성이 지극히 낮다. 대부분의 OECD국가의 공적의료보장의 보장성이 최소 80%를 넘는 현실에서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는 공적의료보장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다. 즉 건강보험의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문제인데 무슨 재정지출을 늘리자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줄여야 할 것은 '부당한' 재정지출이지 '정당한' 재정지출이 아니다.

부당한 재정지출, 즉 허위부당청구라든지, 과잉진료라든지, 대형병원중심의 의료체계로 인한 낭비라든지 하는 부분은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예방접종이라든지, 산전진찰에 필요한 초음파진료라든지, 입원하게 되면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60%가 넘는 본인부담금에 관련된 부분의 지출은 건강보험이 지출해야만 할 부분이고 이러한 부분의 재정지출은 '늘어야만' 한다. 부유한 일부계층에게는 여유자금이 있어 갑작스러운 질병에 대처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사회보장이 강화되지 않으면 질병은 곧 재난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재정적자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당한 재정지출과 부당한 재정지출을 막론하고 재정지출을 무조건 줄이자는 방식으로 가면 매우 곤란하다. 그것은 사회보장을 없애자는 것이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부당한 재정지출은 줄이는 것을 전제로 건강보험의 재정지출은 늘어야만 한다. 성형외과 미용시술과 같은 개인적 용도의 질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할 것을 전제로(대부분의 OECD국가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낸 보험료가 엉뚱한데 쓰이지 않고 제대로 쓰인다는 것을 전제로 보험료를 올리자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 여기에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누진부과를 통해 저소득층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면 당연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찬성할 것이다.

GDP의 1%에 해당하는 액수의 국고예산의 보험예산지원과 최소한 대만의 수준으로 기업주 부담을 늘린다면 재원문제는 충분하다. 사실 보험료의 50%를 봉급생활자가 부담하는 나라는 OECD국가 중 우리나라 하나이다. 이것은 ILO가 규정한 최소기준이다. 대만만 하더라도 직장의료보험료의 60%를 기업이, 10%를 정부가 그리고 나머지 30%를 근로자가 부담한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의 의지이다.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아예 건강보험자체를 유명무실화하자고 주장하는 재계와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이는 김대중 정부의 최대의 실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는 '영원히' 줄일 수 있겠지만 국가의 총의료비지출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고 국민건강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재 재정적자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건강보험의 재정조달 방법을 대다수 OECD 가입국가가 하는 것처럼 국고지원과 기업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바꾸며 이를 전제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건강보험의 사회적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재정파탄상태의 건강보험재정적자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이 길만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우리 사회를 국민적 동의에 기초한 사회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가 이러한 '서민의 정부'가 될 의지가 있는가? 건강보험문제가 기로에 서있듯이 김대중 정부도 기로에 서있다.

우석균/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실장 woos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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