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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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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패션 광고는 옷의 재료같은 실용적 정보보다는 옷이 담고 있는 정신적인 가치를 말하려 노력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컨셉트를 제시하고 이것에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려는 것.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패션 브랜드인 쿠카이(KOOKAI). 20대 초중반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은 바로 페미니즘(Feminism)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남녀평등이 아니라 남성비하나 여성우월주의가 더 맞을지 모른다.
페미니즘이란 주제는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화장품, 향수, 술, 담배 등의 광고에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소비력이 올라간 이상, 그들의 비위를 잘 맞춰야 물건을 팔 수 있는 셈이다.
쿠카이가 보여주는 페미니즘의 수위는 ‘엽기적’이다. 여자들 앞에서, 쿠카이 광고 앞에서 남자들은 너무나도 비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손톱을 가다듬는 여자의 손이 보인다. 남자 하나가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네일 파일(nail file·손톱 다듬는 줄) 끝에서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녀의 손톱을 보면 가운데 손가락만 깨끗하고 다른 손톱에는 때가 끼어있다. 결국 이 남자는 가운데 손톱에서 방금 꺼낸 때가 아닌가. 손톱사이에 낀 때만도 못한 것이 바로 남자인 것.
이 광고는 여성 우월주의로 이어진다. 쿠카이라는 브랜드 밑에 붙은 카피는 다름 아닌 ‘남자들을 구해주자’이다. ‘어디 요 녀석, 불쌍한데 구해줄까?’ 동정 어린 그녀의 속마음.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손가락 끝에 매달린 남자. ‘그 불쌍한 녀석을 우리가 구해줘야지 누가 구해주겠냐’는 자만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정말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까?
양 웅(금강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woong@diamo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