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두영/'낙하산' 보내 주세요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37분


지난주 서울 여의도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증권예탁원과 증권전산이 각각 29일과 30일 주주총회를 열어 결산안건은 통과시켰으나 임기가 끝난 사장의 후임은 뽑지 않은 것. 이들은 이달 10일 다시 임시주총을 열어 신임사장을 선출키로 하는 희한한 결정을 했다.

회사측은 주총장에서 사장을 뽑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적당한 인물이 없기 때문 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 는 딴데 있었다. 4월1일의 정부 차관급 인사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비공식적인 설명이었다.

즉 재경부와 그 외청의 차관급 인사가 마무리돼야 이들 기관의 사장으로 내려갈 공무원이 결정되기 때문에 낙하산을 기다리며 자리를 비워둔 것이다.

이에 앞서 대한투자신탁도 3월 20일 정기주총에서는 사장 선출을 미뤄뒀다가 재경부 출신의 김병균 전 기술신용보증기금이사장이 신임사장으로 내정된 뒤에야 요식절차를 밟기 위한 임시주총을 다시 열었다.

증권예탁원이나 증권전산에 정부 지분은 전혀 없다. 증권거래소가 대주주이며 거래소는 증권사들이 회원사이다. 따라서 사장 선임권은 증권사 및 거래소의 권한이다. 정부는 선임된 사장에 대한 승인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법적인 권한이야 어찌됐건 정부가 사장을 뽑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워낙 오랫동안 굳어져 요지부동이다. 당하는 쪽에서 '알아서 기는' 모습에도 변함이 없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낙하산 인사를 숨기기 위해 애써야 할 것 아니냐" 며 "조금이라도 세상의 눈을 의식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고 개탄했다.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증권금융 등도 올해 사장 임기가 만료된다. 이들 기관은 사장임기가 재경부 인사후에 만료돼 외견상 이같은 볼썽사나운 꼴은 보이지 않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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