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커서핑]"가슴에 독수리 문양을 단다는 것은"

  • 입력 2001년 3월 30일 19시 29분


지난 유로 2000에서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며 자신의 150번째 A매치를 죽쑨 독일의 축구영웅 로타르 마테우스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독일은 대표팀으로 뛰는 것에 명예를 느끼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마테우스 자신의 격세지감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자신이 대표팀에 처음 뽑혔던 20년 전과 지금의 그 격세지감 말이다. 상승의 검은 독수리 문양을 가슴에 달았던 당시 자신의 자부심과 '요새 것들'과의 의식 차이가 그에게 이런 발언을 하게 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일은 유로 2000에서 타이틀 방어는 커녕 8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사실 이상하게도 외신을 통해 유독 독일선수들의 대표팀 기피 현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직도 농촌 사회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남부 이탈리아처럼 어떤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면 온 마을이 잔치 분위기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독일에선 일부 스타급 선수들이긴 하지만 대표팀 일정을 짐으로 여기는 경향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급 선수층이 비교적 엷은 독일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러한 경향은 대표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일 최고의 게임메이커이면서 가장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슈테판 에펜베르그가 그 첫번째 예이다.

그는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그리고 아일랜드의 로이 킨 만큼의 '미친 고릴라가 불도저를 모는 듯'한 필드 장악력을 지닌 선수이다. 천리안을 방불케 하는 시야, 정확한 패싱력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든 공을 뺏기지 않는 가딩력은 다른 세 미드필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유로 96우승의 주역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아스 묄러를 능가하는 미드필더라 여길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94 미국 월드컵 도중,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베르티 포크츠와의 불화로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한 뒤 대표팀 합류를 거부하고 있다. 그것은 플레이 스타일의 이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카이저슐라우테른의 마리오 바슬러가 장외에서의 돌출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선수라면, 에펜베르그는 장내에서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독으로 작용하는 선수이다.

처음 대표팀에 뽑힐 당시 보루시아 묀셴글라드바흐에서 뛰던 그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멤버였던 리트바르스키 이상의 역량을 지닌 선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자유분방함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판에 박힌 스위퍼 시스템 아래의 축구 스타일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그러나 성향은 그의 플레이에 드러났다. 동료선수와의 화합을 가장 중시하는 독일 축구 풍토에서 그는 지나친 드리블과 패스 점유율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특정 선수의 컨디션에 팀의 경기력이 좌우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독일에서 그는 지양돼야 할 존재가 되어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펜베르그는 같은 숫자의 이를 가진 톱니바퀴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지않는 대표팀을 그는 아무 미련 없이 등졌다. 그리고 아직도 독일은 그와 같은 창조적인 미드필더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은 그의 필드 장악력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대표팀엔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오직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 수비수 마르쿠스 바벨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리오 퍼디낸드, 이탈리아의 네스타와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 수비수이다. 바벨이 대표팀 합류를 고사하는 까닭은 에펜베르그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98-99시즌 당시, 소속팀이던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의 FA컵 격인 DFB포칼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자, 눈앞에 두고 있던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합쳐 세 개 대회 동시 우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면 이적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사실 당시 대표팀이나 클럽팀에서 그의 오른쪽 윙백이나 스토퍼 역할 수행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표팀과 클럽팀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데 무리를 느꼈고, 그가 부진한 바이에른 뮌헨은 DFB포칼에선 베르더 브레멘에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지난번 컨퍼더레이션즈 컵에서 독일이 미국에게 0:3으로 패하자 그는, 당시 에기디우스 브라운 회장의 독일축구연맹을 비난하고 나섰다. 연맹이 대전료 챙기는데 눈이 멀어, 대표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 클럽 경기로 피로한 상태의 선수들을 너무 혹사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의 치욕적인 패배가 그것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경기의 직접적인 피로와 시차적응, 거듭되는 각국과의 경기로 인해 노출될 대로 노출된 전술이 독일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에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리버풀로 옮겼고, 리버풀에 적응할 때까지 당분간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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