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서울-도쿄대총장, 도쿄대 졸업식서 日역사왜곡 '질타'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38분


서울대 이기준총장(왼쪽)도쿄대 하스미 시게히코 총장
서울대 이기준총장(왼쪽)
도쿄대 하스미 시게히코 총장
《서울대 이기준(李基俊)총장과 도쿄대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총장은 28일 일본 도쿄 시내 국제포럼 강당에서 열린 도쿄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역사교과서 등 일본의 과거사 왜곡문제를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진정한 반성을 촉구했다. 외국인이 도쿄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것은 1877년 이 대학 개교이래 처음이다.》

▽이기준 서울대총장

도쿄대 졸업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의 대학 총장이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은 양국의 대학 사상 초유의 일이며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도쿄대와 서울대의 일에 그치지 않고 한일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지성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긴요한 덕목 중 하나가 편견 없는 열린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우수한 두뇌 집단일수록 자아 중심적 경향이 강해 타인이나 타문화를 향해 열린 가치관을 갖는데 소홀하기 쉬운 결함을 갖고 있고 이런 결함에서 도쿄대 서울대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편견에 의한 판단과 신념이 몰고 온 불행한 역사적 오점들을 짚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타인과 주변 국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결여된 행동이 그 이웃에게 얼마나 위해(危害)할 수 있는가는 한일 근현대사에서 잘 알 수 있다.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은 편견 없는 상호 이해와 배려를 통한 상생(相生), 즉 협력과 공존의 덕목을 강조하고 싶다. 역사적 경험은 교훈화될 때 비로소 미래적 가치를 지닌다. 역사는 잊혀질 수 있어도 지워질 수는 없다. 양국간의 불행했던 시대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토대로 한 극복 의지가 있을 때에만 신뢰성 있는 참된 이해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히스미 도쿄대총장

도쿄대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 대학의 총장을 주빈으로 맞이했다. 최초로 등장하는 분이 한국의 대학총장이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한일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역사적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기쁨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20세기의 일본에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을 36년간에 걸쳐 유린한, 도저히 정당화하기 어려운 과거가 있었다.

저의 조부와 증조부 세대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한 것으로 우리 세대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그러나 우연한 사태도 적극 받아들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자세에서 윤리가 형성된다. 우리에게 우연이랄 수 있는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반성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일부 일본인이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자학적인’ 역사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진실된 상호이해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에 걸맞은 진정한 명예이다.

역사적인 기억을 잃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며 불성실한 태도이다. 역사란 가혹하기 때문에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한다. 풍요로운 미래를 공유해야 할 한국에 대해 역사적인 기억을 왜곡해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이 자기만족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용기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