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지방선거 과열]단체장들 "마음은 콩밭에…"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32분


‘업무는 뒷전, 재선이 목표.’

자치단체장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업무는 제쳐둔 채 동창회와 체육행사 등 각종 모임에 참석해 생색을 내는가 하면 자치단체의 소식지와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무리하게 대북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결재나 행정보고 등이 제때 안돼 자치단체의 업무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28일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전국 광역 및 기초단체장들이 사전 선거운동 등 선거법위반 혐의로 적발돼 경고나 주의를 받은 사례는 총 124건(주의 82, 경고 42)으로 집계됐다.

▼홈페이지는 단체장 홍보마당▼

▽사전 선거운동 실태〓‘오전 9시반 주민컴퓨터교실 개강식 참석, 10시10분 모 지방지 인터뷰, 10시40분 태권도대회 참석(치사), 11시반 소각장 반대 주민 면담, 낮 12시 관내 기관장과 점심, 오후 2시반 탁구동호인 모임 참석(치사), 4시 ○○동 부녀회장 면담, 5시 청내(결재), 6시 A고교 동창회 참석….’

▼싣는 순서▼

上-돈 없인 못뛴다
中-"주민행정엔 관심없어요"
下-너도 나도 뛴다

충남지역 한 기초단체장의 3월 19일 일정표다. 탁구동호인 모임이나 고교 동창회 등은 이 단체장과 개인적으로 전혀 관계 없는 것이어서 재선을 노린 ‘얼굴 내밀기’로 풀이된다.

부산의 A구청장은 최근 외부일정을 하루 5건에서 7건으로 늘려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결재시간을 매일 오전 10시반 이전으로 정했다.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뻔한 일. 이 때문에 직원들의 큰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대구의 모 구청장은 최근 공보 기획 총무 등 주요 부서에 측근 인사를 기용하는 인사를 단행해 사실상 내년 지방선거 체제에 돌입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산 B구청의 경우 최근 발행한 구보(區報)에 구청장 사진 4장을 게재하고 구청장의 각종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붙여 사전 선거운동이란 비판을 받았다.

▼표의식 엉뚱한 대북사업도▼

주민들을 위한 공간인 자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도 단체장의 ‘홍보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남 천안시 홈페이지의 경우 메인 화면에 이근영(李根永)시장의 인사말이 사진과 함께 올라 있고 이시장의 사진 9종류가 동영상처럼 실려 있다. 아산시 홈페이지에는 이길영(李吉永)시장의 캐릭터와 함께 학력, 경력, 각종 표창수상 내용까지 적혀 있다.

한편 지난달 초 경남 남해군청 직장협의회 홈페이지에는 ‘군수는 벌써부터 선거에 관심이 있다’는 제목으로 농업경영인 초청 간담회 등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 실려 김두관(金斗官)군수가 해명하기도 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박재율(朴在律)사무처장은 “자치단체의 소식지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리는 공적인 도구이지 개인 홍보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대북사업 추진〓고재유(高在維)광주시장은 방북을 위해 11일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갔으나 북한측의 입국절차 지연으로 베이징에서 발이 묶여 있다가 17일에야 평양행 고려항공기를 탈 수 있었다. 고시장은 21일 광주로 돌아왔다.

고시장은 방북 전 “북한측 인사에게 지역김치 5㎏을 전달하고 ‘광주비엔날레’와 ‘광주김치축제’ 등에 북한측이 참가하는 문제 등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방북단에 두 행사의 관련 실무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광주지역 일부 시민단체는 “산적한 지역현안을 제쳐두고 중국에서 1주일이나 방북을 위해 대기한 것이 시민을 위한 일인가”라고 묻고 “이번 방북은 내년 선거를 의식한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전북 군산시도 이 지역 출신인 소설가 채만식(蔡萬植·1902∼1950)선생의 작품 ‘탁류’를 극화한 창작오페라를 올 가을 북한에서 공연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오다 최근 취소했다. 정부의 공연비 지원이 불투명한데다 북한측에서 별도의 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길준(金吉俊)군산시장은 이 사업을 추진하던 중 지난 지방선거 당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13일 대법원에서 벌금 250만원이 확정돼 시장직을 잃었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일부 자치단체가 북한의 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밝히고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전시성 대북사업 등을 보류시키고 있다.

<부산·대전·광주〓조용휘·이기진·김권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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