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권모/불법SW 단속 ‘역차별’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36분


정부의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단속으로 벤처기업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남몰래 지워버리거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아예 회사문을 걸어 잠그는 곳마저 나타난다. “가뜩이나 어려운 벤처기업을 다 죽이려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단속은 ‘한국이 불법 소프트웨어 천국’이라는 오명을 씻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우선 소프트웨어 업체나 판매점에 정품 구입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수천만∼수억원을 들여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쓰지 말도록 교육하고 ‘각서’를 받기도 한다.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단속을 크게 환영해야 할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글과컴퓨터의 한 관계자는 “이번 단속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외국 업체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K사장도 반응은 같았다. “단속에도 불구하고 국산은 한컴의 워디안을 제외하고는 물건이 남아돈다. 반면 외국산은 단속이 시작되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했다. 비싼 외국산 소프트웨어가 동나는 것은 그만큼 단속의 초점이 외국산에 집중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일부 단속반이 사용하는 불법복제 검색프로그램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윈도기반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나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이번 단속이 미국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은 직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단속 목적’에 대한 의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 소프트웨어는 마땅히 근절되고 추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단속이 외국산 소프트웨어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산을 외면한다면 단속의 ‘순수성’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소프트웨어 소비국이자 개발국이라는 점도 정부가 깨달아야 한다.

문권모<경제부>afric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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