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카데미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53분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25일 오후 5시30분(미국 현지시간)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할리우드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 사회로 치러진다. 아카데미 70여년 역사의 이모저모를 정리했다.

■아카데미, 첫발을 내딛다

전세계 영화인들의 축제 아카데미 영화제는 1928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주최로 처음 기획됐다. 지금처럼 성대한 축제가 아니었던 당시 영화제는 규모나 참석자 수 면에서 아주 조촐했다. 첫 번째 아카데미 시상식은 29년 5월26일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의 큰 객실에서 치러졌는데 200여 명의 영화인들이 참석해 간단한 식사를 즐기는 조촐한 파티 수준이었다. 수상자 명단 역시 3개월 전에 이미 발표된 상태라 시상식장에서 수상 결과를 알게 되는 지금의 행사보다 훨씬 서스펜스가 덜했다. 수상부문은 총 12개였으며 수상식 자체의 행사시간은 약 4분 가량.

이처럼 소박하게 치러졌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규모가 늘어났다. 제4회 아카데미 시상식장엔 무려 1800여 명의 영화인들이 모였으며 부통령까지 참석해 영화제를 축하해주었다. 행사장이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으로 정착된 것은 제19회 영화제가 열리던 1946년부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3월25일(미국 현지시간) 스티브 마틴의 사회로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개최된다.

▲ 관련기사

제73회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작 리스트

■생방송, 오스카 TV

오스카 시상식이 시작된 것은 1929년. TV가 발명되기 전이었던 그때는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참석해야만 생생한 축제의 현장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세계 TV를 통해 퀵서비스로 안방까지 배달된다. 올해 시상식은 국내 케이블 TV HBO를 통해 3월26일 오전 8시30분 생방송으로 중계될 예정.

아카데미 시상식이 처음 TV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은 제25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부터였다. NBC TV를 통해 중계됐던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청률은 42.1%. 여태껏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시상식은 46.1%의 시청률을 기록한 59년 영화제이며, 최저시청률을 기록한 영화제는 ABC가 중계했던 86년 영화제다. 당시 시청률은 약 27.3%였는데 이는 다른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비해선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내 별명은 '오스카'

아카데미의 애칭은 오스카. 흔히 아카데미와 오스카를 혼용해서 쓰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의 기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설'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아카데미협회 사서이자 훗날 영화제 집행간부가 된 마가렛 헤릭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유래했다는 설. 그녀가 트로피를 보자마자 "어머, 오스카 삼촌을 꼭 닮았네"라고 말했던 것이 닉네임으로 정착됐고, 제6회 영화제가 진행될 무렵 한 기자가 자신의 칼럼에 '오스카'란 애칭을 사용하면서 세인들에게 널리 퍼졌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스카 단상에 올랐던 사람 중에 진짜 '오스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1941년 45회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주제가상을 수상한 사람의 이름이 바로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였다. 그밖에 후보에는 지목됐으나 수상의 영광을 안지 못한 오스카는 오스카 라거스트롬, 오스카 호몰카, 오스카 브로드니, 오스카 베너 등이 있다.

■싸지만 비싼(?) 트로피

영화인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물건 중 하나인 '오스카 트로피'는 사실 그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다. 필름 릴 위에서 칼을 짚고 있는 기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트로피는 순금이 아니기 때문에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높이 34.3cm, 무게 3.9kg짜리 오스카 트로피의 실제 '감정가'는 얼마일까? 이에 대해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브리태니엄 금속 위에 금을 입힌 이 트로피가 비쌀 리는 만무하다. 명예의 가치를 제외하면 오스카 트로피의 실제 가치는 약 60달러 정도라고. 그러나 이것은 아카데미의 명예가 걸린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에 대해 공공연히 떠들진 않는다.

트로피를 디자인한 인물은 세드릭 기본즈. 그는 단일 부문에서 가장 많은 상을 챙겨간 인물로도 유명하다. 세드릭 기본즈는 미술 감독상 부분에서만 무려 11개의 트로피를 챙겨갔다.

■위대한 승리자들

아카데미 역대 최다 수상자는 '미키마우스의 아버지' 월트 디즈니다. 애니메이션계의 대부이자 미국 메이저 영화사 월트디즈니사의 창업자인 디즈니는 정규 부문에서만 무려 26개의 상을 챙겨갔으며 특별상 6개를 추가해 총 32개의 상을 수상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가 수상한 상은 만화 부문, 단편상, 다큐멘터리, 특수효과, 명예상 등 실로 다양하다.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사람은 패션 디자이너인 에디스 헤드. 그녀는 의상부문에서 8개의 트로피를 수상해 역대 여성 최다 오스카 수상자로 남아있다. 그밖에 연기상 최다 수상자는 12번 후보에 올라 4번 수상한 캐서린 햅번이며, 감독상 최다 수상자는 12번 후보에 올라 3번 수상한 윌리엄 와일러로 기록되어 있다.

■위대한 도전자들

운 좋게 1타석 1안타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건진 경우도 있지만, 6,7타석이 넘도록 안타 한 번 제대로 때리지 못한 스타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리처드 버튼. 그는 7번이나 아카데미 후보로 지목되었으나 단 한 차례도 수상의 영광을 안아가진 못했다. 이에 비하면 험프리 보가트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그는 7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아프리카의 여왕>으로 단 한 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알 파치노 역시 영원한 도전자로 남을 뻔한 배우.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피터 오툴 역시 7번의 후보 지목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관의 제왕'에 그쳤으며 데보라 카, 글렌 클로즈 역시 6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지명됐지만 단 차례도 수상의 영광을 안진 못했다. 그러나 인정 많은(?) 아카데미는 94년 데보라 카에게 오스카 명예상을 수상하며 '무관의 여왕'으로 그칠 뻔한 그녀를 배려했다

■위대한 반항아들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오스카' 하면 깜빡 죽지만 몇몇 배우들은 오스카 수상의 영예를 오히려 거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말론 브란도와 우디 앨런. 총 7번 아카데미 후보로 지목된 말론 브란도는 54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해를 제외하곤 한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제4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하며 인디언 여성을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충격을 주었다. 말론 브란도 대신 오스카 무대에 오른 인디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는 다른 어떤 곳보다 인디언들의 인권 상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 인디언들은 마치 원숭이처럼 취급되며 아주 야만스럽고 호전적이고 악마적인 미개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안티 히어로' 말론 브란도만큼은 아니지만 우디 앨런 역시 오스카의 영광을 아주 우습게 봤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77년 제5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홀>로 작품상 및 감독상을 수상했으나, 단지 클럽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카데미 단상에 서기를 거부했다.

■나이의 벽을 넘다

오스카 수상엔 나이의 벽이 따로 없다. 아직 인생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부터 삶의 굴곡을 겪을 만큼 겪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의 벽을 넘어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80대에 이르러서야 '오스카 패밀리(오스카 수상자들의 모임)'에 등록된 노장 배우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8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시카 텐디는 당시 만 80세 8개월의 나이였으며, 75년 <선샤인 보이>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조지 번스는 당시 만 80세 3개월의 나이였다. 감독 중 80대의 나이에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인물은 아직 없는데, 현재까지 최고령 감독상 수상자로 기록된 인물은 64세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마이 페어 레이디>(64)의 조지 쿠커다.

이밖에 아주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의 영예를 안은 배우도 많다. 천재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은 겨우 6세 때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페이퍼문>(73)에서 열연한 아역 배우 테이텀 오닐은 제46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테이텀 오닐의 나이는 9세. 94년 제66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피아노>의 안나 파킨 역시 당시 11세의 어린 꼬마였다.

■오스카 호스트

아카데미 시상식이 TV 전파를 타게 되면서 아카데미 명사회자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맡았던 인물은 올해 처음 오스카 마이크를 쥐게 된 스티브 마틴을 포함해 총 8명. 53년부터 무려 16번이나 아카데미 사회를 맡았던 밥 호프를 비롯해 빌리 크리스탈, 잭 레몬, 데이비드 니븐, 조니 카슨, 우피 골드버그 등이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활약했다.

올해 아카데미 사회를 맡은 스티브 마틴은 <흡협식물 대소동> <신부의 아버지> 등에서 재기발랄한 코믹 연기를 펼쳤던 스타. 그가 엄숙하고 초조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를 어떻게 유쾌한 분위기로 뒤바꿔 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스카 패밀리

하나도 수상하기 어려운 오스카 트로피를 두세 개씩 챙겨간 오스카 가족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들은 '뮤지컬의 대가' 빈센트 미넬리 일가다. 빈센트 미넬리 감독은 <지지>로 58년 감독상을 수상했고 빈센트의 부인은 39년 명예상을, 두 사람의 자녀인 라이자 미넬리는 72년 <카바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오스카상을 동시 수상했던 가족 수상자는 더글러스 쉬러(30년, 녹음상)와 노마 쉬러(여우주연상) 남매, 월터 휴스턴(47, 조연상)과 존 휴스턴(감독상) 부자, 러처드 M. 서먼과 로버트 B. 서먼(63년, 주제가상 공동 수상) 형제, 카민 코폴라(74년, 작곡상)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자(감독상) 부자 등이 있다. 그밖에 휴스턴 일가는 3대에 걸쳐 아카데미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3대의 영광을 이어간 인물은 바로 월터 휴스턴의 손녀이자 존 휴스턴의 장년인 안젤리카 휴스턴이다. 그녀는 <프리찌스 오너>(85)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수상은 했으나…

아카데미를 수상하긴 했으나 트로피를 만져보는 데에는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이름 앞에 'Last(故)'라는 명칭을 달고 수상자 명단에 오른 인물들. 사망 후 아카데미를 수상한 최초의 인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나리오 작가 시드니 하워드이며 연기자로서 사망 이후 아카데미 수상의 영예를 누린 인물은 <네트워크>의 주인공 피터 핀치다. 1976년 제49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터 피치는 70년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죽은 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인물로 남았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