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학전' 대표 김민기…소극장 지켜온 '대학가 상록수'

입력 2001-03-13 18:56수정 2009-09-21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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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저항의 상징이었던 노래 ‘아침이슬’ ‘상록수’의 작곡자 김민기(50)와 15일 개관 10주년을 맞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의 대표 김민기.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자기 욕심대로 그를 그려냈다.

“30,40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작곡가 김민기’는 내게는 ‘지옥’같은 존재였습니다. 난, 화가 지망생에 노래 만들기를 좋아하는, 숫기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즘 학전을 찾는 20대 젊은 관객들은 대부분 그를 잘 모른다. 신세대들에게 그는 대학로에서 라이브 콘서트와 뮤지컬을 주로 공연하는, 꽤 괜찮은 소극장을 운영하는 50대 아저씨이자 뮤지컬 연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91년 소극장 학전(나중에 ‘학전 블루’로 이름이 바뀜)을 시작으로 ‘학전 그린’ 등 소극장 두 곳을 운영하면서 극단 학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학전소극장이 문을 연지 10년이 됐다.

소극장 경영은 산전수전 다 겪은 연극인들사이에도 힘들기로 소문나 있다. ‘밑빠진 독’처럼 계속 돈만 들어가고 좀처럼 수지가 맞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 역시 소극장 주인으로 지난 10년간 버틴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앨범이후 22년만인 93년 출시된 앨범 ‘김민기 전집’과 관련된 일화. 그는 △노래하기 △사진 찍기 △남 앞에 나서기 등 3가지를 가장 싫어하는 일로 꼽는다. 자신은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고, 천성적으로 ‘앞 것’이 아닌 ‘뒷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 당시 소극장 때문에 다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앨범을 취입하는 댓가로 선금으로 2억원을 받아 소극장으로 진 빚을 갚았지요. 이후 다시 생긴 빚이 5억원이 넘습니다.”

94년 “이번에 망하면 여길 뜨겠다”며 무대에 올린 게 ‘지하철 1호선’이었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의 작품을 김민기가 번안, 연출한 이 작품은 초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롱런에 들어갔다. 이어 ‘모스키토’ ‘의형제’ 등이 호평을 받으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70년대 작업한 마당굿 ‘아구’와 노래극 ‘공장의 불빛’의 경험이 뮤지컬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그의 창작열은 끝이 없는 듯 하다.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그는 올해안에 중국 경극과 우리 판소리를 결합시킨 작품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는 “소극장은 외양으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문화발전을 위한 ‘인큐베이터’”라며 “제대로 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이 아쉽다”고 덧붙인다.

지금까지 1148회가 공연된 ‘지하철 1호선’은 15, 16일 이희호 여사, 고건 서울시장, 가수 조용필 조영남 전인권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을 갖는다. 4월에는 영화배우 설경구 등이 출연하는 ‘드림 팀’을 구성해 이 작품의 고향격인 독일에서 공연을 갖고 27일부터 다시 국내 공연을 시작한다. 02―763―8233

‘지하철 1호선’의 마무리 연습에 한창이던 그가 9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잠시 무대에서 내려왔다. 기자가 기왕이면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눈치를 보내자 그는 꺼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공연이 코 앞으로 다가왔어”라며.

하지만 기자가 “섭섭하다”며 거듭 ‘유혹’하자 그는 “그럼 맥주 2병에, 모자라면 다시 딱 2병만”이라며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조영남이 띄우는 편지

‘밍기’야. 네가 분명 나보다 4, 5세 아래인데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는 까닭이 뭘까.

품위 아니면 격(格), 그런거. 웃기지 마라. 나는 그 원인을 명확하게 안다. 이건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네가 늙어보이는 것은 10주년을 맞은 학전도 그 이유의 하나이겠고 니 주변 머리에 마누라와 자식 먹여살리는 것도 이유겠지.

그러나 너를 팍 늙게 만든 것은…. (아, 내가 서울대 미대 회화과 2학년이던 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머슴이었고 너는 귀공자였다.)

그것은 빌어먹을 술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오죽했으면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소식이 통 없길래 니가 언젠가 술먹다 죽을 줄 알고 ‘김군을 위한 추억’이라는 멋진 추모의 노래를 만들었을까. 그런데 넌 끝내 살아 내 노래가 발표되고 히트되는 길을 전면 봉쇄하곤했지. 악담을 들으면 오래 산다더라. 하하.

‘밍기’야. 그 옛날 나를 미술에 빠지게 만든 건 바로 너였다. 우린 만나면 너는 만날 기타만 튕겨대고, 나는 엎드려 그림만 그렸지. 그래서 네가 뮤지컬 만드는 걸 애당초부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 대학로 학림 주점에서 만났을 때 그날 밤은 드디어 내가 너보다 술을 많이 먹었지? 오래 살다보니 그런 날도 오더라.

우린 계속 엎치락뒷치락 재밌게 살 수 있는 거지. 짱 축하한다.

영남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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